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소월 (문단 편집) == 가족 == 생전 김소월은 아내 홍실단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얻었다. 이 중 장녀 김구생과 3남 김정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에 남았다. 맏딸 김구생은 [[6.25 전쟁]] 도중 요절했으며, 3남 김정호는 [[조선인민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대한민국 국군]]에 재입대하였고 전쟁 후 남한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김소월의 시에 대한 [[지적재산권]]조차도 없으며 시인의 아들이라는 혜택도 전혀 못 받고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는 1958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으며, 결혼 초기부터 선천적 [[신부전증]]으로 인해 몸이 허약한 아내[* 1999년 별세.]의 병수발을 평생 들어줬다고 한다. 그는 평생 남한에 아버지 김소월 문학관을 건립하고 싶어했으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대한민국|남한]]에 살고 있는 김소월의 후손은 손녀 김은숙과 손자 김영돈, 그리고 증손자 3명, 총 5명이 생존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이 할아버지의 시로 인해 받은 돈은 [[미스터피자|엠피그룹]]측에서 광고를 낼 때 <진달래꽃>의 문구를 패러디하며 준 돈 약간뿐이라고 한다. 이후 후손들은 김소월 문학관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2003년 소설가 겸 한의사로 유명한 (사)새한국문학회 경암 이철호 이사장이 김소월의 후손들로부터 2003년 김소월 문학기념사업의 모든 권한을 일임받아 2019년 사재 40억원을 들여 충북 증평군에 ‘소월·경암 문학관’을 개관했다. [* 총 3층 규모로 1층 전시관에는 소월의 친필 작품집 300여권과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손편지, 가계도와 연보 등을 전시해 그의 생애를 한 곳에서 볼 수 있게끔 꾸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