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수정(만화가) (문단 편집) === 데뷔 === 결국 어찌어찌 1979년에서야 결혼식을 올리고[* 세는나이 30살이며, 당시로써는 늦은 편이다.], 비로소 자신의 첫 작품[* 1990년 [[보물섬(만화잡지)|보물섬]]에 회고하길, 이전에 그리던 만화들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리던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에게 거론도 하기 싫은 [[흑역사]]였던 셈이다.]이라고 할 [[1남 4녀 막순이]]를 연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만화를 연재할 당시 대선배 만화가인 [[길창덕]] 화백이 만화가들 모임에서 그를 보더니 차갑게 "자네, 일본 만화 어느 걸 베꼈지?"라고 물었고, 이 말에 김수정은 '''베껴 그릴 바에야 만화가를 때려쳤을 겁니다.''' 확고하게 대답했다. 이 대답에 길창덕 화백은 "그래, 역시 그렇지. 자네의 독창적 그림체였지? 미안하네. 한번 확인해보고자 일부러 차갑게 말해보았네"라고 웃으며 말하고, 그를 인정해주었다. 이렇게 길창덕 화백의 인정도 받고, 꾸준히 작품을 그리긴 해도 그다지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덤으로 대머리 캐릭터를 그렸다가 80년 초반, [[전두환]]을 연상케한다는 죄목으로 작품도 강제 종료되는 일까지 겪게 된다.[* 그 시절에 무척 흔하던 일이다. 시사만화가 [[김성환(만화가)|김성환]] 화백 작품 [[고바우 영감]]은 1950년대부터 [[대머리]] 캐릭터였음에도 이 당시 새해 인사한다고 큰절하며 돋보이는 대머리가 '''전빠박'''을 비하한다고 신문에 연재를 못했으며 연기자인 [[박용식]]이 전두환 닮았다고 방송 활동을 금지먹었다.] 그나마 [[O달자의 봄]]이 영화화가 될 정도로 인기를 얻어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때,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외식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83년 아기공룡 둘리를 [[보물섬(만화잡지)|보물섬]]에 연재하게 된다. 연재 전에 둘리를 친구인 만화가 [[김동화]]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뭐야? 이 악어 새끼는?"하고 물었다고… 발끈한 김수정은 "야! 공룡이다. 이게 어디가 악어로 보이냐?"고 했지만 김동화는 "이런 거 인기 못 끌 거 같다. 우리 내기하자"고 했고, 몇 해 뒤에 그 내기로 술 한판 얻어먹었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