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순애(독립운동가) (문단 편집) === 해방 이후 === [[8.15 광복]] 이후, 김순애는 1945년 11월 임정요인 1차 환국 때 [[김구]], [[김규식]], [[이시영(정치인)|이시영]], [[김상덕]], [[엄항섭]], [[유동열]] 등과 함께 한국에 귀환했다. 이후 그녀는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활약하면서 여성교육에 공헌했다. 또한 1949년 8월 20일 민족진영강화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남편 김규식이 [[6.25 전쟁]] 때 북한군에게 의해 납북되자, 그녀는 정계를 은퇴하고 남편의 생사를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만년에는 서울에서 손자 김건필의 집에 머물다가 1976년 5월 17일 병사했다. 향년 87세.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순애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