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신조 (문단 편집) === 사건 이후 === 생포 이후 2년 넘게 효자동 방첩대에서 조사받으며 지내다 군에 많은 정보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4월 10일]] 풀려났다. 대한민국으로 전향하여 공소취하 처리되어 구속에서 풀려난 후 결혼[* 남한에 살아 본 적도 없는 김신조(함경도 출신이라 [[남북분단]] 전인 유년기에도 남한에 와 본 적이 없었다.)가 아내를 어떻게 주선받았는지, 아내가 누구의 가족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정이 관여했을 거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하고 1970년대 초부터 서울의 [[동작구]] [[흑석동]] 시범아파트[* 당시 삼척 무장공비 사건에서 투항한 공비인 김정명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고 함께 중정의 감시를 받았다.]에서 살았고 중앙정보부의 감시는 꾸준히 받았다. 1970년대 중순부터 사당동으로 이사하여 아내와 가게를 차리고 자영업을 했다. 이후 1996년 목사 안수를 받아 [[서울성락교회]][* 현 이단시비가 있는 [[개신교]] 계열 교회([[개신교/이단사이비교단결의|참고]])이다...]에서 목사를 하다가 은퇴하고 2010년에 [[한나라당]] 북한인권위 고문열에 임명되기도 했다. 군대에서 안보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은퇴]]했지만 서울성락교회에는 공식적인 '''은퇴목사'''라는 직함이 없기에 그냥 '목사'라고 불린다. 현 교회측 3부예배에 항상 출석 중이다. 술집에서 오줌 누던 중 웬 청년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굴을 알아본 청년이 술에 취한 상태로 '''"너 때문에 군대에서 개피봤어. 이 개새끼야."''' 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수도 서울에다 공비들이 침투하는 희대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육해공군의 복무기간이 최대 6개월 이상 연장되는 바람에 당시 청년들의 증오가 매우 심했다. 김신조는 그냥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6264.html|가만히 있지 않고 싸웠다는 주장도 있다.]] 민간인까지 살상한 살인마가 버젓이 방송에 나온다며 [[김현희]]와 함께 욕하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많은데 일단 김신조는 자신은 '자수'하였으며 직접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물증도 있다. [[드보크]]에 숨겼던 총과 탄창에 탄약이 모두 가득 차 있었고 총 내부에 화약흔도 없었다. 즉, 임무에 투입된 이후 발포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저 총이 김신조의 것이 맞다면 총으로 사람을 죽인 적은 없는 것. 그것이 재판에서 증명되어서 귀순하겠다고 하자 검찰이 공소를 취하했다. 정부에서는 [[한국화약]]에 일자리를 주선해 주기까지 했다. 다만 2, 3개월 다니다 그만뒀고 이후 전술했듯 종교인으로 살았으며 안보강연과 신앙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2012년 1월 21일에 [[채널 A]] 뉴스에 [[https://youtu.be/aLKKroBofKc|출연했다.]] 2015년 1월 21일에 [[채널 A]] “정용관의 시사병법”에 출연하여 [[1.21 사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였다. [[https://youtu.be/L0CW4mkOdXY|채널A 출연 영상]] [youtube(CRMdEDtviOQ)]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 2020년 9월 24일자에 출연했다. 당시 파주 쪽으로 침투해서 나무꾼 4명과 마주친 이야기와 그 중 한 명의 동생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였으며 당시(27세)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마음 속의 물음에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살고 싶다는 마음에 투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신조가 증언한 나무꾼들의 태도가 시대에 따라 오락가락해 의문이 든다. "4명의 나무꾼들은 벌벌 떨면서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해방군으로서 환영되리라고만 배워온 김신조의 마음에 한 가닥 의문이…」라고 썼다(동아일보 1968.11.6).", "「(1968년 1월) 19일 오전 10시쯤 총조장인 김OO과 나는 총으로 위협해 나무꾼을 붙잡았다. 그는 얼굴이 하얘져 달달 떨기 시작… “누구랑 같이 왔어?” “동생이 쪼기 있어요.” 나무꾼의 어깨를 쳐 앉은 채로 동생을 부르도록 시켰다.」(경향신문 1996.10.17)" 그런데 이것이 2020년이 되면 나무꾼 형제들이 자신들을 거짓 환영하여 안심시켰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31일에 [[채널 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도 출연했다. [[https://youtu.be/PjOFFBQkO4Q|이만갑 출연영상]] 2022년 1월 21일에는 [[1.21 사태]] 54년을 맞아서 [[태영호]] 의원과 대담하였다. [[https://youtu.be/z2nE_tsjY04|태영호 의원과의 만남]] 2022년 6월 7일 미국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현 서울성락교회 교회측 3부 대예배 출석 중이다.[[https://youtu.be/1QDsKJ4zRGg|#]]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