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삼/일생 (문단 편집) === 퇴임 후 === > '''[[대한민국 대통령|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고]][[성수대교 붕괴 사고|통]][[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과]]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고]][[1997년 외환 위기|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 ㅡ 퇴임사 中 >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려웠다.''' >ㅡ 조선일보에서 출간한 회고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통절한 개혁으로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었다가, 막판 [[1997년 외환 위기]]에 대한 대실책으로 퇴임할 때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후 최저 지지율은 알다시피 [[박근혜]]가 '''4%'''라는 말도 안되는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경신했다. 다만 박근혜의 4%는 주간 지지율이었기에, 분기별로 산출한 지지율은 김영삼의 6%가 최저다. 박근혜는 10월 말 까지는 20%대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분기 통합으로는 6%이하가 나오기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12월 초에 탄핵 소추 되면서 그 이후 지지율은 조사되지 않았다.] 이 YS의 지지율 격차 기록은 아직도 한국에서 전무할 정도이다. 그 후에도 각종 측근들의 비리 등으로 초반의 영예가 무색해질 정도로 불명예스러운 퇴임의 쓴맛을 봐야 했다. 퇴임 2년 뒤에는 한 시민으로부터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9/1781545_13451.html|빨강 페인트가 주입된 계란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다만 평범한 시민은 아니다. 고려대 졸업생으로, 김대중 선거운동까지 했다고 나온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원로 정치인으로서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하는 등 매우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2년]] 4월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일본 명문대 [[와세다대학]]에서 특명교수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예 고향으로 낙향해 공개적으로 방문객을 맞으며 활동했던 [[노무현]]을 제외하면, [[2010년대]]까지 생존해있던 전직 대통령들 중 언론 노출도와 대외활동이 가장 왕성한 인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내기도 했으며,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새해나 선거 시즌만 되면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모습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회창]]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325169&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전직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직접적으로 지지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새천년민주당]]에서 꽤 비판을 하기도 했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을 지지하기도 했다.[[https://v.daum.net/v/20070621165005704|#]] 이후 2009년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당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근혜]]를 지지했다.[[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84|#]]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표명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동지회(회장 김봉조) 신년회 인사말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서 세계 역사에 자랑스런 여성 대통령이 됐다"며 "얼마나 기쁜 일인가"하고 밝혔다. 건강한 모습의 김 전 대통령은 이어 "나는 이번 선거에서 정말 피를 말리는 것처럼 싸워왔다"며 "내가 200만표 차이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이겼는데 이번에는 그토록 아슬아슬 할지 몰랐다"고 농담조로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했다. YS는 그러면서 "어쨌든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우리는 앞으로 5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더욱 세계의 자랑거리로,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내면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김봉조 회장은 민주동지회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기 직전 YS를 만난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5·16과 유신에 대해 반(反)헌법적이고 정치발전을 훼손했다고 인정하면서 피해자들에게도 사과했다. 박 후보가 이렇게 말한 다음날 YS를 찾아 '당신의 아픔이 많지만 지금 마땅한 다른 후보가 없으니 박 후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했다. YS는 '개인과 단체의 아픔이 있지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거야'라면서 흔쾌히 승락해줬다. 그런 결단을 해주신 YS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 회장은 이날 "동지들 가운데 뜻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오랜 우정으로 함께 하길 바란다"며 "지금 박근혜 특사로 중국에 가있는 김무성 동지도 나와 똑같은 뜻"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안정적으로 갈 수 없다고 우리 모두 초조하고 불안해 했다"고도 덧붙였다. [[박근혜]]에게 대통령선거에서 도와준것에 대한 감사전화도 받았다.[[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7277|#]] 박 당선인은 "중요한 시기에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 [[박근혜]] 당선에 대해 여성 대통령 당선은 기쁜일이라며 축하하였고,[[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84|#]]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제18대 대통령 선거]]때 굉장히 도왔다고 말했다. [[https://v.daum.net/v/20130304161108042|#]] [[김영삼]]이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를 지지하고 도왔다고 말한다.[[https://m.mbn.co.kr/tv/422/1529/1042726|#]] 2008년 9월 말경 부친상을 당했다.[[http://v.media.daum.net/v/20081002170506528|#]][* 평균수명이 여자가 조금 더 긴 탓에 그때뿐만이 아닌 의학이 발달한 현재에도, 어머니가 살아계신 대통령들은 두 명이 있었지만 아버지를 모시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미국에도 몇 없고 한국에는 김영삼 밖엔 없다. [[윤석열]]의 경우는 친부모 모두가 생존한 경우였지만 임기 중 부친상을 당했다. 임기 중 부모상을 당한 사람만 찾아도 19대 대통령인 [[문재인]]과 20대 대통령인 [[윤석열]]을 제외하면 없다. 문재인과 윤석열을 제외하면 모든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 부모상을 당했다는 이야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4cb6ce0f32d4820a03ca8ea44e4209513465e78aee8255a23b5a69e5a4c5130.jpg|width=100%]]}}} || || {{{#ffc224 '''아들 김현철이 SNS에 올린 김영삼의 모습[* 2014년 10월 12일 사망 1년 전의 모습으로, 당시는 1년 반의 입원 생활 후 증상이 나아져 퇴원을 바로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http://cfile25.uf.tistory.com/image/237FCD47543A40820FA9E9|#]] 실제로 10월 중에 퇴원했다.]'''}}} || 타고난 강골 체질에 철저한 건강관리로 퇴임 후에도 오랫동안 건강을 과시해오던 그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지, [[80대|80세]]를 넘어간 이후부터는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 뇌졸중 판정을 받고 치료에 들어갔다. 판정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그리 심각한 뇌졸중(중풍) 수준은 아니었던지라, [[2011년]]~[[2012년]]까지는 꾸준히 대외활동을 하며 언론에 모습을 비췄다. 그러나 [[2013년]]부터 뇌졸중 증세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뇌졸중과 폐렴 증상으로 자주 쓰러졌고 [[2014년]] [[가을]]까지 1년 6개월동안 장기입원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