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수(군인) (문단 편집) == [[비리]]를 고발하다 == [[2009년]], 해군 내에서 발생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9억원대 납품 비리를 수 차례 고발했다. 고발 전까지는 [[계룡대]] 등 우리 군의 핵심에서 근무하며 2007년부터 3년 동안 선후배 다면평가에서 1위를 하는 등 엘리트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발 후에는 윗선에 찍혀 근무평점 최하 등급을 받고 원래 소속인 보급병과와는 상관 없는 [[국군체육부대]]의 [[한직]]으로 [[좌천]]되는 고초를 겪었다. 더구나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수병]]과 책상을 같이 써야 하는 모욕까지 당했다. 참고로 국군체육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닌지라 대부분 전역을 앞둔 장교들을 배치하는 부대이다. 당시 체육부대에 복무 했던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체육부대 장교들 내에서도 '괜히 나서서 일을 키웠다.' 식의 뒷담화가 돌았고, 그런 보이지 않는 따돌림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다고 하다.[* 군에서 내부고발자들을 괴롭히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진급누락인데, 고발행위를 비리 척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급하기 위해 공을 쌓으려 했을 뿐이라고 몰아가는 것이다. 특히 비리를 저지른 자가 상관일 경우 '자신의 진급을 위해 상관을 음해한다'고 분위기 조성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육군 [[헌병]], 해군 헌병, [[국방부 검찰단]] 등을 전전하며 수차례 비리를 고발했음에도 관련자가 처벌되지 않고 오히려 억울한 처지에 놓이자, 끝내 [[MBC]] [[PD수첩]]에 출연해 이를 폭로했다. [[파일:9HbUFND.jpg]] 3년 넘게 별 진전이 없었던 김 소령의 비리고발은 PD수첩 방송 이후 약 1달 동안 초고속으로 조사가 진척되었고, 모든 고발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고 관련자들이 처벌되었다. 그러나 정작 김영수 소령은 2011년까지 진급 없이 소령으로 복무했다.[* [[참여정부]] 국방장관 재직 시절 사건을 보고받았던 [[김장수]] 의원의 경우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자 "김 소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진급이 누락됐다고 하는데 중령·대령 다 시킬 거냐"라고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후 [[내부고발]]의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지만, 결국 씁쓸하게도 김 소령은 2011년 6월 훈장 수훈 4달 만에 [[전역]]했다.[* 해군에서는 전역 당일까지도 김영수 소령에게 경고장을 날려 주는 치졸함을 보였다.][* 소령 계급 정년이 만 45세이기 때문에 이론 상으로는 2013년 초까지는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고발로 인해 조직 내부에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고 국군체육부대 같은 곳으로 전출시키면서 철저히 보복이 이뤄졌기 때문에 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20년 근무기간만 채우고 군문을 나오고 말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리를 보고도 묵과하는 이유가 괜히 나서봤자 비리는 척결되지 않고 자기만 조직에게 찍혀서 피해를 본다는 두려움 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국군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정의를 관철한 김영수 소령의 용기가 귀감이 되는 것이다. [[영웅]]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김영수 소령을 진급욕심에 찌든 부패군인으로 매도했던 당시 [[정옥근]]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은 수억 원대의 횡령 및 비리 혐의로 한 차례 집행유예를 받은데 이어, 2015년 초에 또다시 구속되어 8월 12일에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김영수 소령을 매도하려다 오히려 자기가 [[역관광]]당했다.[* 김영수 소령은 비록 진급은 못했어도 예비역 소령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정옥근은 제적되어 그냥 민간인 범죄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