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철(북한) (문단 편집) === 초기 이력 및 정찰총국장 시절 === 1946년 량강도에서 태어나서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90년 남북 고위급 회담 당시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남한 적이 있다. 당시 계급은 소장이었으며, 인민무력부 부국장을 맡고 있었다. 본명은 김동수인데 김일성의 요구로 인하여 김영철로 개명했다는 주장이 [[https://www.dailian.co.kr/news/view/551830/?sc=naver|있다.]] 남북회담 당시에 대한민국 육군준장 박용옥과 대립했는데, 기선제압을 하겠다고 '준장'도 장군이냐고 놀려대곤 했다고 한다. 근데 이후 박용옥이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박용옥 소장이 김영철에게 아직도 별 한개냐고 역으로 놀렸다고 한다. 그런데 1993년 7월 19일, 최고사령관 명령 0040호에 따라 소장으로 진급한 김영철이 있는데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북한에서 남한을 상대할 때 기선제압을 하느라 김영철의 계급을 실제보다 높게 내세웠거나 강등 후 재진급했다는 소리가 된다. 이후 북한 군부의 대남 초강경파로 활동했으며 2009년,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대남 공작기구들을 통합하여 정찰총국이 신설되자 초대 정찰총국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겸 군사위원에 선출되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15일 최고사령관 명령 003호에 따라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 2015년 12월, [[김양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김양건]] 사망 후 후임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임명설이 제기되었는데, 대남 무력도발 총책임자인 정찰총국장 출신인 그가 대남비서로 조동된 것으로 보아 북한 내부 대남 온건파가 김양건 사망과 함께 모조리 숙청당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지만 김양건 숙청설이 별 근거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김양건이 온건파라는 주장은 순전히 남한에서 군인 출신인 김영철에 대비해서 이미 죽은 김양건을 근거 없이 추켜올리는 정황이 있다는 것을 보면[* 가령 김양건은 목함지뢰 사건 이후 김관진과 협상하려고 남한을 방문했을 때 황병서보다도 더 딱딱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검증이 필요한 주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