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하 (문단 편집) == 여담 == * 문단의 촉망받는 소설가로 2004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서 서사창작 전공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2007년 사직하고 돌연 캐나다와 미국으로 떠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지금은 아니지만 KBS 1라디오에서는 평일 밤 10시에 거의 항상 문화 프로그램을 배치해놓았는데, 2006년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프로그램명은 '김영하의 문화포커스'. 이 당시 진행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제법 있는 듯하다. 2017년 현재 해당 프로그램은 [[http://www.kbs.co.kr/radio/1radio/culturegong/|문화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전에도 SBS 러브FM의 도서 관련 프로그램 '[[책하고 놀자]]'의 진행을 2001년부터 2003년 10월 19일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다.] * 가수 [[이적(가수)|이적]]과도 친분이 두터워 [[KBS 2FM]]에서 '이적의 드림온'이 방송될 당시에는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이적의 단편소설집인 『지문사냥꾼』에도 추천사를 써주었을 정도. 동시에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보면 이적의 추천사 비스무리한 것도 나온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작소설에도 이적의 추천사가 있다. * 취미삼아 [[쿠키]]도 굽는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writer.kimyoungha/photos/a.310644629000653.72301.135463543185430/762383357160109/?type=1&relevant_count=1|사진은 살짝 어색한 웃음이 포인트.]] *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힐링캠프]]에 나와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7046245|요즘 한국인들이 살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한 마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120902109919807051|#]] 해당 프로그램에서 가드닝이 취미라고도 말한 적 있다. * [[일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공통점이 매우 많다. 김영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둘 다 외롭게 자라왔던 것과[*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녀독남]]이고 김영하는 아래로 남동생이 있지만 가까운 친척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적인 인간들의 삶을 주로 그리는 성향도 비슷하고 방랑벽이 있는 성격에 예술 방면으로도 공통점이 많으며, 둘 다 결혼을 했지만 자녀가 없는 것[* 단 무라카미의 아내는 유산한 이후로 자녀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고 김영하는 신혼 초부터 쭉 비출산을 다짐하여 자발적으로 딩크족이 되었다. ], [[고양이]] 애호가인 것도 같다. 거기다 둘 다 대학시절 운동권 출신이었고 일찍 그만 둔 것도 똑같다. 집단주의와 집단행동을 혐오하고 개인주의와 문화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까지 똑같다. 작품 활동 중간에 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집필 성향이 조금 바뀐 것도 그렇다. 하루키는 [[걸프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고베 대지진]] 등의 사건들을 계기로 좀 더 사회 참여적인 작품들을 많이 냈으며 1인칭을 고수하던 작법도 3인칭으로 바뀌었다. 김영하도 뉴욕 체류 시절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집필 스타일이 약간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세월호 참사 전과 후에 집필된 단편들이 같이 들어있는 <오직 두 사람>에서 드러난다. 둘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유년시절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거주하였고 6학년 졸업 직전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로 인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까지 한곳에 1년 이상 거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 등단 초기 왼쪽 귀에 [[피어싱]]을 했었다. 지금은 안하지만 ‘귀걸이 한 소설가’라는 레테르가 아직도 유효해서 김영하 하면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있다. * 2012년부터는 [[부산]]에서 살다가 2015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서울)|연희동]]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집 바로 앞에서 궁동산 숲을 밀고 빌라를 짓는 난개발이 시작되는 바람에 주민들과 함께 개발에 맞선다.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현장 사진을 올렸으며, 황석영 등 동료 문인들과 독자들이 연대하여 맞서 개발이 중단되었다. 당시 현장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열어 전국에서 찾아온 독자,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닷새간 가지기도 했다. * 원래 정치적 사안에 나서지 않는 편이었지만 개나리언덕 사태를 겪고 [[장하나(정치인)|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3386&ref=nav_search|#]] * 2017년 5월부터 [[나영석]] PD가 제작하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했다. 진행자인 유희열과 다른 출연자로부터 '무슨 소설가가 이렇게 아는 게 많냐?'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나, 본인은 '소설가들 중에서는 자기는 상식이 없는 축에 속한다'라며 겸손한 답을 내놓았다.[* 여담이지만 계간지《문학동네》 김영하 특집호에, 동료 소설가 배수아는 김영하가 학벌 좋고 아는 것 좀 많은 잘난 소설가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알고 보니 좋은 소설가더라는 취지의 소개글을 써 준 적이 있다. 사실 배수아 본인도 [[이화여대]] 출신이지만 말이다. 본인이 상식이 없는 편이라고 했으나, 실제 소설가들 사이에서도 지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 듯하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갔는데, 그 예로 프로그램 출연 직전 발간된 <오직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소설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 위의 사례들로 알 수 있듯 사고 방식이 독특하면서도 주관성이 뚜렷한 소설가로 유명하다. * 2018년 2월부터 독서를 권장하는 [[공익광고협의회/작품/2010년대|공익광고]]에 등장했다. 작가 스스로도 엄청난 다독가다. * [[이탈리아]]에서 3달을 있었던 적이 있어서[* 당시 있었던 일을 여행 에세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으로 출간했다.] 알쓸신잡3에서 피렌체에 있었을 때 식당에서 [[이탈리아어]]로 주문하는 모습을 보였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3622634|#]] * 2020년 12월부터 인스타그램에서 [[김영하북클럽]]을 시작했다. 가입 절차는 따로 없으며 매달 정해진 책을 읽고 #김영하북클럽 해시태그를 달아 자기 피드에 올리면 된다. 월말에 열리는 라이브방송에는 2000명 넘게 동시접속하기도 한다. 여기 선정된 책들은 다수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https://www.kimyounghabookclub.com|#]] *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심지어 주제강연을 맡는 연사 중 하나로 참여하며 모든 주제강연 중 가장 먼저 매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 2022년 12월부터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 [[방탄소년단]]의 [[RM]], [[장항준]] 감독,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법의학자 [[이호]] 교수,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 등과 함께 출연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