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환(농구) (문단 편집) === 프로 지명 전 === 김해가야고 시절 득점기계로 명성을 날리고 [[양희종]]과 포워드 라이벌이었다. 2002년 고등학교 최고 랭킹을 놓고 경쟁을 했다. 양희종이 1위였고 김영환은 2위였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농구부에 진학을 하게 된다. 고려대 진학 후 선배인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과 함께 고려대의 주포로 명성을 날렸던 선수다. 2005년 정기전에서 2001년 모교 대선배였던 [[오용준]]과 [[백인선]]이 활약한 이후 4년만에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당시 [[김일두(농구)|김일두]] 선배와 [[양우섭]] 후배와 함께 활약을 했다. 이외 동기로 [[신제록]]과 [[차재영]] 그리고 이영현[* 인지도가 낮은 농구인이다. KBL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했지만 김진 감독님께서 정들었던 동양 오리온스/오리온스를 떠나면서 SK 나이츠로 이적한 뒤 2군(현 KBL D리그) 드래프트로 지명했다.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은퇴 이후 WKBL KB 스타즈 코치로 활약했다.]이 해당된다. 2005 이즈미르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대표팀 기수를 맡은 경력도 있다. [[파일:오리온스 김진 감독 김영환 선수.jpg|width=500]] [* 표정을 보면 [[김진(농구인)|김진]] 당시 오리온스 감독은 2007 KBL 드래프트 지명권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바뀐 구단 단장이 추진하면서 김영환을 잃게 되었다. 이 시절 평소 코트의 신사 혹은 코트의 스님이라는 긍정적인 별명이 있었는데 거꾸로 되었다. 그만큼 화가 난 상태였다. 대신 바꾸어서 말하면 김영환에 대한 신뢰가 큰 것이다. 바뀐 선수가 바로 귀화 출신으로 연세대 출신 빅맨이었던 [[이동준(1980)|이동준]]이었다. 김영환은 이후 전자랜드와 KTF의 트레이드가 추가로 나오면서 데뷔 때 이적만 2번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은 오리온스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SK 나이츠 감독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표정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만큼 김영환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강했다. 이 시절 김 감독은 평소 신사와는 다르게 무언가 좋지 못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사실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멤버로 11년간 코치-감독을 했지만 자신도 변화를 통해 이적으로 도전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12-13 시즌 LG 세이커스 감독 시절 트레이드를 통해 kt 소닉붐과의 [[조성민(농구)|조성민]]이 포함(향후 2017 KBL 드래프트 지명권으로 허훈과 양홍석)된 충격의 트레이드 이전까지 4년반을 스승과 제자로 함께했다.] 황금 세대로 불린 2007년 드래프트에서 한 때 로터리픽으로도 고려되었지만, 결국 1라운드 8순위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가 아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입단하게 되었다. [* 원래 8순위는 대구 오리온스의 몫이었지만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와의 트레이드로 함께하지 못했다.] 지명순번이 밀린 이유는 부상. 대학 초년 시절부터 달고 다닌 [[무릎]] 부상으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 결국 프로 데뷔를 앞두고 김영환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 블랙슬래머]]가 주도한 2:2 트레이드의 대상자가 되어 [[부산 kt 소닉붐|KTF 매직윙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한권]]과 [[이홍수]]가 전자랜드로 갔고, 김영환과 박세원에 현금을 얹는 트레이드를 통해 KTF로 또 이적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