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오랑 (문단 편집) === 순국 후의 이야기들 === 김오랑 소령의 양친은 막내아들의 비참한 죽음에 충격을 받고 [[홧병]]으로 사망했다. 김오랑의 부인인 백영옥(白榮玉)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완전 실명했다. 체포조를 지휘했던 [[박종규(1944)|박종규]] 중령과 김오랑 소령은 가까운 선후배라서 충격은 더했다. 두 사람은 관사에서도 위아래층에 살던 이웃이였고 쿠데타가 발발하기 불과 며칠 전에도 부부들끼리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훗날 백영옥은 관사에서 퇴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갈 곳도 없는 상황이였다. 관사에 머무는동안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던 도중, 총격에 맞은 김오랑을 의무실까지 업어준 당번병을 찾았다. 그 역시 상관들에 의해 함구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설득끝에 친하게 지낸 이웃인 [[박종규(1944)|박종규]] 중령이 지시했단걸 알게 되었다. 그 뒤 전화로 왜 그랬냐고 원망하듯 따지자. 박종규 중령은 "난 군인이니까 명령대로 한 거요!" 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에 백영옥이 "군인이 반란 일으키라는 걸 명령대로 하나 보죠?" 라며 일갈하자 반론하지 못하고 끊어버렸다고 한다. 1986년 한 여성지에서 백영옥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매달 30만원씩 나오는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기업 사원 월급이 보통 30만 원 정도였으니 제법 큰 돈이었다.] 김오랑-백영옥 부부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백영옥의 건강문제로 인해, 자녀 계획 자체를 미루고 있었기 때문. 백영옥은 1990년에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1944)|박종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류되었으며, 1991년 6월 28일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실족사로 수사가 마무리되었으나 백영옥의 유족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떨어진 난간의 높이가 고작 사람의 허리정도인데 어떻게 거기서 실족해 떨어졌냐는 것.] 그나마도 처음에는 자살로 발표했으나 유족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자 경찰에서 슬쩍 실족사로 수정한 것이다.[* 사실 이전인 1988년에 그보다 먼저 김오랑 중령의 상관이었던 [[정병주]] 소장이 12.12 진상조사 및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와중에 갑자기 실종후 120여일이 지나서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또한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였건만, 괴상망측한 까닭에 걸려서 남편과 합장되지 못했다. 백영옥은 사후 친정 오빠들에 의하여 수습되고 화장처리되어 1991년 11월 15일 친정오빠였던 백영도씨가 [[부산영락공원]]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를 신청하여 20년 가까이 무연고자로 방치되어있다 2008년 3월 31일 개장되어 무연고자들과 합동으로 산골되었다고 한다. 김오랑을 사살한 [[박종규(1944)|박종규]] 중령은 [[소장(계급)|소장]] 계급까지 진급하였으나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당시 강제 [[예편]]되었고 [[군인연금]]도 [[토사구팽|끊기고 비참하게 살다가]] 2010년 12월 7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7세. 늦게나마 참회했는지, 죽기 1년 전인 2009년 12월 9일, 참군인 김오랑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지금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하늘의 벌이라면서 12.12에 참여했던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용서해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1962871|#]] 2022년,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사망을 '''전사'''로 판정하였다.[* 과거에는 순직.] 김오랑 중령은 적 교전-[[12.12 군사 반란|무장 반란]] 등을 방지하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된 것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74485?sid=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