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완선 (문단 편집) == 위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개요_김완선.jpg|width=100%]]}}} || || {{{#ffffff '''1987년의 김완선''' }}} ||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섹시 콘셉트'''를 본격적으로 정형화시킨 대표적인 가수.[* [[현진영]] 1집 타이틀곡 야한여자도 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sexy girl이라는 단어를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야한 여자로 작명한듯 하다.] [[노출]]에 의한 노골적인 섹시 콘셉트가 아닌[* 엄격한 방송 규제 등으로 노출 의상은 불가능하기도 했다.], 김완선 특유의 농염한 표정 연기로 섹시한 분위기를 어필하며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당대 [[디바|최고의 여성 댄스 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 이후에 그녀에게 비교될 수준의 독보적인 원톱의 인기 위상과 대중적 커리어를 만든 여성 댄스 가수를 뽑자면 [[엄정화]], [[이효리]], [[보아]] 정도로 이 외에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외에 각자 나름 신드롬을 만들고 다양한 스타일들로 이름을 알린 여성 댄스 가수들이 다수 있지만, 장기간 독보적인 톱스타였던 김완선에게 비교할 정도가 안 된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장르를 넘어 한국 여성가요계를 인기로 완전히 평정한 '''인기 원톱 여가수'''였다. 댄스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여가수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실력은 지금까지도 [[https://youtu.be/AWDdRIjuF94|여전히 건재하다]].[* 컴백 후 출연한 TV프로그램 [[승승장구]]에서 --[[G.NA]]--가 즉석에서 한 번 알려준 Black & White 안무를 거의 그대로 따라하면서 댄스의 여왕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때 지나가 허탈해하면서 말하길, "이거 하려고 1주일을 연습했는데" 라고 말했다.] '''한국의 [[마돈나]]'''라는 말을 처음 들은 여가수이자 섹시 디바다.[* 김완선이 1992년 은퇴를 선언한 이후 한국의 [[마돈나]]라는 명칭은 1993년에 가수로 데뷔한 동갑내기 [[엄정화]]가 이어 받았다.] 가창력 부분은 데뷔 당시부터 여러 안 좋은 말이 있었지만 이후 꾸준히 노력을 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초기에 가창력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었다 해도 당대에 인정받은 다른 여가수들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일 뿐, 지금도 가창력 부족을 지적 받고 있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아이돌 여가수 수준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김완선이 활동했던 [[1980년대]]와 [[H.O.T.]] 이후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데뷔한 아이돌 세대와의 가요계 분위기 차이가 근본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댄스뮤직(혹은 비디오형 가수)이란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 김완선, [[박남정]] 시대부터이고 기본적인 가창력이 갖춰진 가수한테 비트가 비교적 빠른 곡에 맞춰서 댄스(율동)연습을 시키는 수준이었다. 김완선도 15살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나름 가창력이 갖춰진 상태였다. 이에 반해 2000년 이후 아이돌 세대는 비주얼과 춤이 되는 연예인 지망생을 뽑아서 노래 연습을 시키는 구조라 이전과는 정반대다.] 그래도 1집 시절부터 종종 라이브로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립싱크 모드일 때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춤을 선보이는데 비해 라이브 때는 정적인 동작만 보여줬다. 그러다 최고 전성기인 5집에 이르면 립싱크 때만큼의 화려한 춤은 아니라도 춤과 자연스러운 라이브 노래를 동시에 선보일 정도에 이른다. 또한 무릎팍도사에서 밝히길 매니저였던 이모가 의도적으로 높은 키로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해 힘들었다고 밝혔다. 고음이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완선에 대해 논의할 때 의외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은 특유의 비음이 섞인 음색. [[나미(가수)|나미]]나 [[김정미(가수)|김정미]], 훗날의 [[조원선]]과 유사한 쿨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유명했으며, 시대가 조금 늦어 본격적인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EDM]])의 시대에 데뷔했다면 훨씬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런 쿨한 톤은 오토튠이나 보코더 등 일렉트로니카의 보컬 이펙터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중가수로서 누구나 목소리를 들으면 알만한 고유의 음색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받은 일이다. [[김창훈(음악인)|김창훈]]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2집 시절에도 타이틀로 내세웠던 곡들 이외의 노래들을 보면 김완선의 음색을 살리려한 노래들이 많았고, 이장희가 맡았던 3집의 경우에는 너무 음색 쪽을 살리려다 김완선의 댄스가수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 [[손무현]]은 5집에서 김완선의 음색과 댄스가수로서의 능력을 합칠 수 있는 곡들을 만들어냈고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댄스가수임에도 앨범은 록음악 관련 인물들과의 접점이 많다. [[신중현]], 박광호, [[김창훈(음악인)|김창훈]], 박청귀, [[손무현]] 같은 인물들은 전부 록음악을 기본으로 했던 사람들. 그래서인지 앨범들을 들어보면 이런 곡을 김완선이 불렀나 싶을 정도로 록음악 성향이 강한 곡들이 곳곳에 있다. 뿐만 아니라 김완선의 히트곡들에서도 보통 댄스곡과는 달리 내지르는 듯한 창법으로 부른 부분들이 나오는 건 저런 앨범 관련 인물들 때문이다. 한데 1~2집 시절의 록 음악 성향 곡들은 김완선의 가창력에 대한 평가를 깎아먹는 데 일조한 면도 있다. 당시 곡들이 김완선이 가진 가창력 이상의 고음을 요구한 탓에 고음을 내기 위에 목을 쥐어짜다 음이 툭툭 갈라지는 게 노래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한백희의 '가창'에 대한 지론은 "너무 잘 하면 자꾸 듣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음을 전반적으로 높게 잡아 녹음시켰다고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래도 4집 정도에 이르러선 록 성향의 곡도 적당히 소화해냈다. 이런 록 음악과의 접점을 보면 2011년의 신곡인 수퍼러브가 록 스타일인 것도 뜬금없는 건 아닌 셈이다. [[월간 윤종신]] 2012년 3월호에 수록된 록 발라드곡 '널 사랑해 오늘따라'에서 보컬을 맡았는데 이 또한 호평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