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1924) (문단 편집) == 문학적 평가 == 현대 중화권에서 김용의 소설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김용의 무협은 단지 많이 읽히고 잘 팔리는 통속, 대중 소설을 넘어서 [[유교]], [[불교]], [[도교]] 등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을 읽는 창 또는 [[중국/문화|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김용은 뛰어난 [[스토리텔러]]인데다가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뛰어난 작가이다. 특히 자신의 소설 속에 쏟아내는 그 엄청난 지식은 가히 압권으로 어문학, [[철학]], [[사학]], [[종교학]] 등 중국 전통의 [[인문학]] 전반에 높은 수준의 식견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신필(神筆)'이라 불린다. [[판타지]]에 [[J. R. R. 톨킨]]이 있다면 [[무협]]에는 김용이 있다고 할 정도로 서양의 중국 관련 교재에도 김용의 소설이 등재되어 있으며, 영미권에서 톨킨의 판타지를 톨킨학으로 부르면서 연구하듯이, 중국어권에선 김용의 무협을 김학 혹은 용학이라고 부르면서 연구하고 있다. 김용을 연구하는 김학 연구로 학위를 받은 대학교수들도 수두룩하다. 김용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대단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색채 또한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창조한 인물들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제멋대로 날뛰고 영악하지만 몹시도 총명한 여주인공 [[황용]],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불구자 영웅 [[양과]], 감정을 봉인하고 살아가다 점점 인간성에 눈뜨는 [[소용녀]], 잔인한 악당 두목에서 순정에 눈뜬 소녀로 탈바꿈하는 [[조민]], 권력을 탐하다가 남자이길 포기하고 여자의 삶을 희구하는 타락한 권력자 [[동방불패]][* 김용이 만들어낸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기괴한 설정으로 당시는 물론 지금도 굉장히 많이 회자되는 등장인물이다.], 무술의 무자도 모르면서 누구보다 두둑한 베짱과 인망을 가진 [[위소보]] 등이 그러하며,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을 후대의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금서]]로 지정되어 주목받지 못하다가[* 중국 공산당뿐만 아니라 [[http://m.pressian.com/m/m_article/?no=59191|중국 국민당도 한 동안 금서로 분류하였다.]]] 80년대부터 대만의 <아호>라는 철학 잡지에서 처음 주목을 받았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했던 현대신유학의 대표 잡지에서 그의 작품을 철학적 관점에서 수차례 심도있게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천룡팔부>는 민족의 화해와 중원문화의 자긍심을 넘어 불교의 철리를 무협의 형식을 빌어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했고, <소오강호>는 독고구검의 검법을 빌어 도교 미학의 상징성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고, <사조영웅문>은 유가의 우직한 선비상을 곽정이란 캐릭터를 통해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그의 문체는 피동문을 난발했던 3,40년대 중국 문학가들과는 달리 매우 현대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자 했던 소설 무대의 공간은 중화문화의 고전적 요소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그가 그린 세계는 민족 간의 대립을 넘어선 화해의 지평이었고 , 파벌 간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절대무공의 경지였다.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은 항상 거대한 계파 간의 투쟁에 상처입은 개체 민초의 소중한 불씨를 되살리는 데에서부터 눈부시게 데뷔한다. <천룡팔부>의 [[교봉]], <신조협려>의 [[양과]], <사조영웅문>의 [[곽정]], <의천도룡기>의 [[장무기]]가 모두 그렇게 무대 속에 등장하였다. 그의 소설은 중국 [[교과서]]에도 수록되고 있다. 2004년 11월 베이징에서는 인민교육출판사에서 최초로 김용의 대표작인 <천룡팔부>의 일부를 교과서에 수록했다. 3차에 걸친 엄격한 검정을 거쳐 검정위원들은 김용의 작품 두 편을 선정했다. 그 후 2007년에 <설산비호> 중 제5회의 내용 일부가 재차 베이징시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홍콩에서는 김용의 이름을 동아시아에 떨친 작품인 <사조영웅전> 중 제 30회의 일부가 교과서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설산비호>가 수록되는 대신 <[[아Q정전]]>의 일부가 교과서에서 빠졌다. 그리고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진환생진성>을 대체했다. 루쉰 소설의 일부가 교과서에서 삭제되자 루쉰과 김용의 지지자들은 두 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루쉰파는 김용 소설이 통속 소설에 불과하다고 폄하했고, 김용파는 루쉰파를 혁명의 오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두 파로 갈린 지지자들의 흥분 상태와는 달리, 검정위원들과 문단에서는 김용 작품의 교과서 수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들은 30~40년대의 중국 소설이 현대 중국문화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엔 한계에 이르렀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부족한 부분은 김용의 작품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동의했다. 김용 작품이 지닌 현대적 문체의 매력, 수준 높은 문학성, 모방할 수 없는 심리묘사와 경관묘사 등은 김용의 작품이 지닌 문학적 뛰어남이다. 이와 더불어 김용의 작품은 중국문화의 위대한 가치를 고양시켰다고 보았다. 중국의 협의(俠義) 정신, 민족 단결적 요소, 개성 해방의 추구, 도덕적 희생정신 등은 문학성과 더불어 교육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김용의 작품은 [[싱가포르]]에서도 수록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사조영웅전’은 싱가포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부분 전재되어 (화교 후예가 인구의 70%인) 싱가포르 청소년들로 하여금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 또 [[버클리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중문학의 부교재로 쓰일 정도로 서양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은 삼류 통속소설로 치부되던 무협소설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 받는다. 옌자옌 베이징대학 중어중문학 교수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아(雅·순수문학)와 속(俗·대중문학) 쌍방의 문학 경험을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와 속을 초월한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네 가지 업적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1) 삶과 오락을 동시에 달성하고 통일했다. 2) [[사실주의]]라는 주류 예술 사조에 비범한 상상력을 결합했다. 3) 전통 [[백화문]] 소설 형식과 언어를 유지·개조·창신(創新)했다. 4) 순수문학과 대중(통속)문학의 벽을 깨고 진정한 아속공상(雅俗共賞·식자와 서민이 함께 감상하고 즐기는 것)을 달성했다"라고 평했다. 옥스퍼드 현대 세계 문학 가이드에 의하면 김용의 소설은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고 고상한 취향과 저급한 취향에 모두 어필할 수 있다는 평가를 했다.[* [[https://books.google.com/books?id=uTXiuub6Rx4C&pg=PA99|출처]]] 또 그의 작품은 다른 현대 작가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세계 중국 공동체를 분리하는 지리적, 이념적 장벽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https://books.google.com/books?id=uTXiuub6Rx4C&pg=PA99|출처]]] 이러한 문학적 성과는 조설근의 <[[홍루몽]]> 외에 달리 없다.[* 인지도야 <[[수호전]]>, <[[삼국지연의]]>, <[[서유기]]>가 높다 할 수 있지만, 이들 작품은 서사와 격렬한 감정들의 묘사는 뛰어나지만, 일상생활의 정경과 섬세한 애정까지 아우르는 것은 아니었다. 홍루몽을 보면 이 작품이 과연 건륭제 시대에 나온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히 치밀하고 섬세한 인물묘사와 애정이 표현되어 놀라게 된다.] 김용처럼 실제 역사와 가상의 무협세계를 버무려 어색함 없이 서사를 이어갈 정도의 필력과 박학다식을 겸비한 작가는 지금까지도 거의 없다. [[김용 월드]]는 단순한 역사적 시기와 사건을 무협에 소재로서 얼추 끼워넣는 얄팍한 퓨전이 아니다. 역사와 무협을 독자가 느끼기에 위화감없이 결합시키는 건 둘째치고, 작가가 표현하기에 가장 어려운 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중국 문화사의 엄청난 식견이다. 예를 들어 서검은구록에서 유명한 궁중야사인 청향비와 건륭제의 출생 이야기를 진가락이라는 인물을 통해 절묘하게 엮어내고, 벽혈검에서는 민간에서 떠도는 장평공주와 독비구난의 전설을 가지고 구슬픈 로맨스를 만들어냈다. 소오강호의 조천추와 영호충의 술잔 이야기, 강남사우의 금기서화 에피소드, 천룡팔부의 단예의 산다화, 허죽의 진롱기국, 아벽의 강남시사 등의 중국 문화의 다양한 정수를 김용처럼 자연스럽게 감성적으로 작품 속에 풀어낼 작가가 없다. 그것도 자료 수집에 절대적으로 편리한 '''인터넷조차 없던 시절'''에 이정도 식견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동양고전을 한껏 배우며 자라난 환경 덕분도 있을 것이다. 한편, 무협계 자체의 거대한 명성으로 이후 한국 무협의 방향에도 꽤 영향을 준 작가다. 김용의 이른바 영웅문([[사조삼부곡]]) 시리즈는 1980년대 국내 무협계의 인기를 견인하다시피 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개방(무협)|개방]](사조영웅전)이나 [[독고구검]](신조협려, 소오강호), [[무당파(무협)|무당파]](의천도룡기), [[마교]](의천도룡기, 소오강호), [[화산파(무협)|화산파]](소오강호) 등 오늘날 무협물에서도 자주 소비되는 개념들의 분위기나 설정에 많은 영향을 줬다. 만화계에서도 [[박성우(만화가)|박성우]]처럼 김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가들이 있다. 물론 한국 무협은 김용 외에도 정/사파, [[구파일방]] 설정을 잡고[* 물론 구파일방 항목에도 있듯 와룡생의 구파일방과 지금 구파일방 개념은 다르다. 애초에 개방은 김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빗겨가 무림쟁투만을 주 요소로 그리기 시작한 [[와룡생]]과 여기에 짧고 간결한 문체와 뭔가 있어보이는 묘사를 깔고 들어가는 [[고룡]]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용대운]]과 [[야설록]]이 대표적이다. [[문정후]]도 고룡의 영향을 제법 받았다.] 그 혼자 영향을 준건 아니지만, 또다른 중화권 신파무협의 대가 [[양우생]]보단 훨씬 많은 영향을 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