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수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용수포심패스트.gif|width=100%]]}}} || || '''{{{#white 143km/h 포심 패스트볼[* 당시 나이가 39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용수스플리터.gif|width=100%]]}}} || || '''{{{#white 128km/h 스플리터}}}'''[* 김동주가 OB 소속으로 언급되어있기 때문에 1998년 9월 영상이다. 김동주가 OB 소속으로 활약한 시즌은 딱 이 시즌이었고, 이듬해 두산으로 팀 이름이 바뀐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용수슬라이더.gif|width=100%]]}}} || || '''{{{#white 121km/h 슬라이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oneycam 2019-09-28 00-07-29.gif|width=100%]]}}} || || '''{{{#white 117km/h 커브}}}''' || 투수 치고 상당히 작은 키[* 전성기였던 1980년대 ~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도 작은 편이었다. 동 시기 최고의 선발이었던 [[최동원]]이 179cm, [[선동열]]이 184cm이었다. 그리고 동년배인 다른 팀 에이스들 중 체구가 작은 편인 [[이상군]], [[장호연]]도 176cm, [[양상문]]도 175cm였다. 또한 김용수와 함께 1990년대 초반 엘지 투수진의 4인방이었던 [[김태원]]이 190cm, [[정삼흠]]이 184cm, [[이상훈]]이 180cm였으니..]에 정확한 제구력을 갖춰 강속구보다 탄탄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선수라는 인상이 있지만, 데뷔 초기에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하여 평균 140km, 최고 145km 정도의 빠른 공을 던지는 강속구 계열의 투수였다[* 김용수의 전성기이던 1980년대말 ~ 1990년대 초반 KBO 평균 구속은 135 ~ 137km 정도였다. 1980년대에 최고구속 150km를 훌쩍 넘겼던 [[최동원]]을 제외하면, 1990년대 초반에 KBO에서 최고구속 150Km를 시즌중 단 한번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고 알려진 투수는 [[선동열]](해태), [[박동희]](롯데), [[김태원]](LG) 3명 정도라 일컬어지던 시대였다. 2020년대 기준으로 김용수는 150-155에 가까운 구속을 던진 셈]. 주 무기는 데뷔 초기에는 슬라이더. 이후 청룡이 LG로 바뀐 1990년대 이후에는 포크볼을 추가로 구사했는데, 현재는 이 구종이 [[스플리터]]에 더 가깝다고 평가된다. 포크볼은 KBO에 굉장히 늦게 도입된 편인데, 스플리터는 더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김용수 본인이 밝히지 않는 한 포크볼인지 스플리터인지 명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이는 최동원이 던진 역회전 공도 마찬가지. 스플리터인지 포크볼인지 싱커인지 의견이 제각각 갈린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기에 별명은 "노송"이지만, 이건 35세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해서 붙은 별명. 20대 시절의 별명은 슬라이더가 날카롭다고 "면도날"[* 하지만 면도날은 후배인 [[조규제]]도 훗날 얻은 별명이기도 했고 김용수 세대에서도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에게 언론이 쉽게 붙이다가 떼었다가 하던 별명이라 김용수만의 별명이라 할 만큼 유명하지는 못했다. 물론 김용수는 계속 잘했으니 그 호칭을 잃은 적이 없다.]. LG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제국의 파수꾼'이라는 별명도 잠시 있었다. 심지어 1998년에는 '''[[노익장|만 38세의 나이로 18승]]'''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령 다승왕에 등극했다.[* 시즌 막판에 16승 상태로 다승왕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감독의 배려로 2일 연속 등판해서 모두 승리를 기록했다. 하지만 주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고 모두 승리로 연결시킨 부분은 분명 선수의 능력이다.] 심지어는 은퇴한 후에도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30km/h대의 공을 던진다는 소문이 있다.[* 우리 나이로 49세였던 2008년 LG 러브 페스티벌에서 잠실야구장 전광판에 132km/h를 찍었다. 그리고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최근에 스피드 건으로 구속을 측정하니 128km/h가 나왔다고 한다. 회갑을 지난 2021년 스톡킹에서는 작년에 사회인 야구 하면서 나온 구속이 120km/h인데, 3주정도 훈련하면 130km/h는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하였다.] 수더분한 이미지와 다르게 어깨 근육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어[* 웨이트 트레이닝과 새벽 4시에 6km 러닝을 거르지 않던 몸짱이었다.] 속구 자체가 강력[* 선동열 같은 강속구 투수는 아니었지만 140 초중반의 만만치 않은 속구를 워낙 면도날처럼 찔러 넣다보니 속구 자체가 강력했다. 또 변화구가 다양해서 타자들이 더 헷갈려 하곤 했다.]했고, 다양한 구종을 모두 잘 던졌다. 140중반대의 속구와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을 모두 적절하게 잘 구사한 투수로 단순한 기교파가 아니라 구속이 꽤 좋은 투수였다. 또한 훌륭한 구원투수가 되기에 적합한 신체적 장점을 갖고 있었다. 작은 체구지만 전성기 시절의 혹사로 얻은 좌골신경통 외엔 딱히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었던 튼튼한 몸과 가만히 있다가 마운드에 구원 등판해서 1개나 2개의 연습투구만 해도 몸이 완벽하게 풀리는 축복 받은 체질이 바로 그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