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수 (문단 편집) === [[LG 트윈스]] 코치 1기 시절 === 2000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LG 트윈스 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1년간 코치 연수를 받았고, 2002년에 귀국하여 2004년까지 LG에서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03년에는 LG의 2군 [[감독]]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책임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사실상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고, 2004년에는 다시 2군 투수코치가 되었는데[* 이광환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잔여 계약기간을 2군에서 채우게 되었다.] 김성근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인지, 구단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김성근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선수들에게 가혹하게 대해, 은퇴를 시켰다는 증언이 있다.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5839]] 1군에서 난타 당하고 내려온 투수들이 2군에 갔다 오면 투구 밸런스가 잡혀 제법 좋은 투구를 해서, 이 때 까지만 해도 팬들 사이에선 평가가 매우 좋았다.[* 사실 2군 투수코치라 1군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당시 1군 투수코치였던 [[정삼흠]]과 [[이상군]]이 야구계에서 이름값으로 코치한다는 평을 듣는 수준의 인물인지라 김용수의 성과가 반사적인 효과로 더욱 좋게 보인 점도 없지 않다. 그리고 정삼흠은 2003년 시즌 도중 [[김재현(1975)|김재현]]의 음주운전 차량에 동석했다가 시즌 후 해임되었고 다시는 프로로 돌아오지 못 하고 있다.] [[이동현(1983)|이동현]], [[김광삼]] 등의 젊은 투수들이 멘토처럼 따르던 코치였으나 2004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LG를 떠나게 되었다. LG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이유가 참 웃긴데, 당시 감독이었던 [[이순철|어떤 사람]]이 '''김용수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김용수는 [[이순철]]보다 1살 많은 데다가(이순철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했기 때문에 학번은 2년 차이. 이순철은 덕분에 빠른 1963년생인 [[선동열]]과도 친구로 지낸다.), 출신 대학(김용수-중앙대, 이순철-연세대)도 달라서 접점이 아예 없었다.] 자신이 팀을 운영하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쳤다.[[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22&aid=0000064001|#]] 더군다나 [[이순철|그 사람]]은 잠실구장에 걸려있던 김용수의 41번 '''영구 결번 유니폼까지 떼어내게 하는''' 졸렬함의 끝을 보여주며 가뜩이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의 강제 트레이드, [[류지현(야구)|유지현]]의 은퇴, [[김재현(1975)|김재현]]마저 FA로 이적하게 되어 이미 화난 팬들의 분노를[* 이 일이 모두 '''2004년 한 해에 일어났다.''' 시즌 6위로 가을야구도 못한데다가 병풍까지 터져서 LG팬들은 짜증나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자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투수코치를 내쳤으니...] 그야말로 극한까지 시험했다. LG가 10년 암흑기를 거치고 많은 감독들이 팬들에게 욕을 먹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이순철이 꼽히는 이유, 볼드모트도 아닌데 이름으로 조차 불리지 않고 별명[* 순페이 등의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LG 팬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해설자 이순철로서는 그러려니 하지만 '''감독 이순철'''은 용서 못한다는 LG팬들이 아직도 많을 정도, 롯데 팬들이 [[백인천]] 감독을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