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운용 (문단 편집) == 여담 == * 6개 국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를 구사하는 유창한 외국어 능력자였다고 한다. * 태권도 명예 '''10단'''이다. 태권도는 유도의 단·급 제도를 받아들여[* 정확하게는 [[바둑]]의 단·급 체계를 [[유도]]가 도입했고, 이게 유도와 제휴 관계에 있던 [[가라테]]에 이식되었다가, 한국에서 가라테를 태권도로 개조하면서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9단이 끝이지만 태권도협회 회장이면서 IOC 위원으로 태권도 세계 보급에 힘쓴 공로로 명예 10단이 수여됐다.[* 참고로 [[후안 카를로스 1세]]와 (1994년 IOC 총회에서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큰 몫을 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도 명예 10단이다. 특히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실력으로 (초단에) 입단한 경력이 있는 진짜 유단자다.] 다만 실제로도 엄연히 '''공인 5단'''인 태권도 유단자긴 하다.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경동고등학교 시절 권법을 배웠고[* [[태권도/역사 #s-1.1.4|YMCA권법부]]의 윤병인 사범이 당시 경동고등학교 체육교사로서 권법을 가르쳤다.], 그 후에 태권도 공인 5단을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kdwon_blog&logNo=14020324827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땄다]]. 실제 2000년대 중반 대구은행장을 지낸 이화언 9단 등 제자들도 있다. *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운용에게 "외국에 나가면 나보다 더 유명하다"며 덕담을 건넨 적도 있을 정도로 스포츠 분야에선 국제적 위상이 쎈 인물이긴 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해외 주요 인사들의 반응을 보면 또 다른 차원의 인물이라, 일종의 립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 [[프레이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영문명은 미키 김(Mickey Kim)이다. * 스포츠 외교가답게 좋은 협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2년 앞둔 1992년 2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태권도]]를 정식 종목에서 배제하자 국내 체육계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영향력이 큰 [[중국]]과 [[쿠웨이트]] 등의 몇몇 회원국 체육계에 사절단을 급파하고 태권도 선수가 제법 있는 일부 국가와 공조하는 등의 대응에 나섰는데, 그 와중에 김운용은 셰이크 아마드 OCA 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초청해 [[국기원]]에 데려갔다. 셰이크 위원장은 그냥 태권도를 소개하는 자리이겠거니 하고 별 생각없이 갔는데 김운용이 안내해준 전시관에는 선친이자 초대 OCA 위원장인 파하드 아마드의 여러 사진이 있었다. 파하드는 [[걸프 전쟁]] 때 이라크군과의 교전 도중 전사했고 설상가상으로 쿠웨이트 왕궁이 불에 타면서 파하드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죄다 유실되어 그야말로 기억에 의존해야만 떠올릴 수 있었는데, 김운용이 선친의 생전 사진은 물론이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막식 때의 영상 자료까지 건네줬던 것이다. 이에 셰이크 위원장은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김운용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고 마침내 히로시마에서 태권도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냉정하게 말하면 불공정한 인맥 외교..읍읍-- 사실 셰이크 위원장이 입국 당시부터 태권도의 종목 채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소 직설적인 인터뷰를 할 정도로 김운용과 사이가 제법 막역한 편이었다. 물론 김운용이 선친 파하드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것도 있다. 그러나 비극적으로 사망한 선친을 추억할 수 있는 큰 선물을 김운용이 준비한 것도,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국제 스포츠 외교의 승리지만 일화적 측면에서 볼땐 태권도의 종목 채택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에도 알게 모르게 힘을 보탰는데, 당시 [[김영삼]] 前 대통령의 부탁으로 IOC 위원장이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사마란치 위원장이 당시 FIFA 회장이였던 아벨란제와 만남을 가지는 등 공동개최 성공에 힘을 보탰다. * [[장도영]] 장군과 인연이 있다.[[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8601|#]] * 2001년 5월 6일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 [[출발 드림팀]] 코너에서 100대 드림팀의 탄생을 축하했다. [[https://youtu.be/idTb7lk4wyA?feature=shared|#]]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