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운용 (문단 편집) == 평가 == 김운용은 상기했듯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한국 스포츠 특히 [[태권도]]계의 위상을 올려놓는 등 많은 공헌을 했다.[* 그와 비견되는 인물로는 [[정몽준]] 전 [[FIFA]] 부회장이 있다. --둘 다 종국엔 씁쓸하게 퇴장한 것도 비슷하다.--] 허나 상기한 몇몇 논란과 부정부패로 본인 스스로 그 명예를 날려먹은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김운용 이후 [[이연택]] 대한태권도협회장 등의 후임들이 "태권도 용어 공용화 허용"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IOC 위원 중 그 누구도 용어 공용화를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는데 알아서 긴 꼴이다.] 한동안 구관이 명관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일부 태권도인은 태권도의 발전 방향에 있어서 무도, 격투기적인 면보다는 운동경기 및 보급에 더 치중한 면을 비판하기도 한다. 헌데 김운용 본인은 태권댄스도 좋지만 무도로서의 정신, 전통을 유지해야 된다는 식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국제태권도연맹]] 측에서도 별로 좋게 취급하진 않는다. 미국 태권도의 개척자 [[이준구(태권도)|이준구]] 사범도 "그(김운용)는 태권도의 ‘태’자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는 평생 태권도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해 뛰었는데, 그 사람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관련 비리에 연루되는 바람에 태권도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어요."라고 김운용을 좋지 않게 평했다. 그래도 도올 [[김용옥]]이 저서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에서 지적한 맥락과 비슷하게, [[최영의]]라는 희대의 무술가를 통해 세계로 발돋음한 [[가라테]]와 달리[* 사실 풀컨택트 가라테(극진가라테) 입장에서 보자면 최영의가 업계를 일으켜세운 인물인게 맞으나, 정통가라테 입장에서 보자면 (유파가 나뉘어있긴 하지만) 전체 파이에선 지금도 더 많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기에 완벽히 맞는 설명은 아니다.], 인프라적으로 십수년은 처져있던[* 사실 오키나와 무술이던 가라테가 일본 본토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건 1920년대 이후부터다. 태권도와는 약 20여년 정도로 생각보다 엄청 차이가 나진 않는다.] 태권도가 가라테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심지어 올림픽에도 먼저 진출한 것은 김운용의 공도 크다. 물론 김운용이 태권도계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이미 태권도계 체계 정립과 통합은 이뤄지고 있었고, 본인 자리 사수하는데만 열을 올려 정작 후계자를 키우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