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응우 (문단 편집) == 생애 == [[평양부]] 중성리에서 [[소작]]을 짓다가, 고순화방으로 이동해 지주 집안의 묘지기를 맡았다. 본래 [[김일성]]은 본인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신의 집안이 [[전라도]] [[전주시|전주]]에서 살다가[* 그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전주로 많이 몰렸다고 한다. 전주는 김일성의 연고지이니, 차마 인민군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 그러나 전주에서도 [[전주형무소 학살 사건|학살]]은 자행되었다.] 8대조인 김계상이 [[함경도]]로 이전하면서 북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하는데, 중성리에서 농사를 짓던 김응우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지주]] 이평택의 묘지를 돌봐주기로 하고 [[만경대 고향집|산당집]]을 한 채 받아 이주한 것이 [[김씨왕조|김씨 일가]]의 [[만악의 근원|시초라고 한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1878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