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의기 (문단 편집) === 진실을 위해 몸을 던지다 === 1980년 5월 30일 서울 종로5가 소재 기독교회관에서는 금요기도회가 열릴 예정었다. 이 곳에서 김의기는 광주의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기독교회관은 자주 시위가 있던 곳인데다 그날은 시위를 예상하여 일방통행마저 금지시킬 만큼 경계가 삼엄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요기도회는 취소됐지만 시위를 결행키로 한 김의기는 12시경 회관에 들어가 희생을 최소로 줄이고자 모든 일을 혼자서 추진했고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손수 타이프쳐서 인쇄했다. 그 와중 계엄군이 진입해 체포하려고 했지만 김의기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엄군을 피해 유인물 인쇄를 계속했다. 하지만 계엄군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계엄군에 의해 인쇄는 중단된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의 내용과 유서가 없다는 점을 비춰 볼 때, 투신의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되지만 계엄군과의 몸싸움이 있었고 결국 김의기는 6층 높이의 폭 1m 베란다[* 종로5가 기독교회관 베란다는 일반적인 베란다라기보다는 장식 형태의 바닥 없는 베란다라고 볼 수 있다.] 밖으로 떨어져 운명하였다. 계엄군들은 떨어진 그를 구하기는 커녕 밑으로 떨어진 유인물을 줍느라 바빴다. 사태가 진정된 후 늦게나마 계엄군에 의해 시신이 인근에 있는 혜화동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결국 김의기는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