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인후 (문단 편집) == 죽음 == 1560년([[명종(조선)|명종]] 15년) 1월 14일 약을 먹고 집안 사람에게 일러 ‘내일은 보름날이니까 정성들여 제사 음식을 갖추어, 자식들이 사당에 제사를 지내게 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그는 위중함에도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비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명하기를 ‘내가 죽으면 을사년(乙巳年, 1545년[* 인종 즉위년]) 이후의 관작(官爵)을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 다음날 16일에 병이 위급하자 정침(正寢[*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에서 홀연히 역책(易策)[*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이나 임종을 이르는 말. 증자가 죽을 때를 당하여 삿자리를 바꾸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예기]]의 단궁편(檀弓篇)에 나오는 말이다.]하였다 향년 51세 조선시대 평균나이에 천수를 누렸다 하나 현재로 보면 한창 젋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동년 3월에 장성 대맥동 원당산(願堂山)[* 전라남도기념물 제219호,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산25]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자리[*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자방(子方)을 등지고 오방(午方)을 바라보는 방향. 정북(正北) 방향을 등지고 정남향을 바라보는 방향이다.]에 장사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