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일경 (문단 편집) === 사후 === 이 정도로 영조 및 노론과는 불공대천과 진배없는 사이였다보니 당연하게도 이후 김일경은 역적으로 취급받았다. 반대로 소론 준론들에게는 충신 취급을 받았고 이들은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후로도 영조는 영조 31년 [[나주 괘서 사건]]이 일어나자 그나마 살아남은 김일경의 후손들을 보이는 족족 없애버리는 등 철저히 씨를 말렸으며, 후대 임금인 정조 이후도 할아버지의 정통성 문제가 걸린데다가 김일경에게 적대적인 노론이 집권했기 때문에 복권은 꿈도 못 꿀일이었다. 김일경의 복권은 조선이 멸망하기 직전인 1908년에야 이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