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일권 (문단 편집) == 기타 == * 태평양 시절인 1989년 시즌의 한 경기에서 1루 출루 후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포수의 악송구로 공이 외야로 빠지자 이를 틈타 3루로, 그리고 내친김에 홈까지 질주하여 세이프에 성공했다. 다시 말해 타자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상대 실책과 자신의 빠른 발만으로 득점을 올리는 '무타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1999년 1출루 3도루의 [[신동주]]와 2015년 [[삼성 라이온즈/2015년/8월/30일|8월 30일 경기]]에서 [[박해민]]이 재현하였다. *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던 시절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광주 [[화정동(광주광역시 서구)|화정동]]에 거주했다. 현재는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 해태 시절에는 [[팬 서비스]]에 대한 평이 엇갈린다. 야유하는 홈팬들을 노려보거나 직접 응징하려 했다는 증언도 있고, 사인해주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 한마디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유형이었던 듯하다. * 이야기를 하면서 "이 김일권이가~" 식으로 본인의 3인칭화를 잘하는 편이다. * 학번이나 나이가 같은 건지 알 수 없으나 출연 영상에서 보면 2살 연상의 [[김재박]]을 재박이, 1살 연상의 [[이광은]]을 광은이라고 불렀다. 전설의 타이거즈에 전화상으로 출연했을때도 1년 선배인 김준환에 대해 설명할 때 '김준환이가~'라고 불러서 김봉연의 지적을 받았다. * 1985년 신인으로 입단한 [[선동열]]의 멘탈을 다 잡아준 일화가 있다. 고교-대학 시절 슈퍼스타였던 선동열이 주위의 많은 기대를 안고 등판했으나 데뷔경기에서 대량실점, 다음 경기에서도 대량실점을 하고 말았다. 고민에 빠진 코칭스태프들이 패전처리로 올리자 마운드에서 씩씩대며 공을 던졌고 결국 김일권이 팀 전체 집합을 소집하여 심한 말로 선동열을 질책했고 그 뒤로 기량이 향상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에이전트]] 제도가 없어 연봉 협상을 선수와 구단이 직접 하던 시기였는데 선동렬의 부친 선판규가 연봉협상에 나서자[* 팀은 다르지만, 야구계의 선배 대투수인 최동원도 부친 최윤식 씨가 아들의 매니저/에이전트 역할을 도맡아 했다.] 선동열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한 적도 있었다. * 한때 지병인 [[당뇨병]]으로 고생했다. 삼성 코치 시절 당뇨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겼던 적도 있다는 걸 봐서는 꽤나 심각했던 듯 하다. 다만 그 이후로는 관리를 철저하게 했는지, 현재는 나이에 맞지 않게 호리호리하고 미노년 삘이 난다. * 슬하에 1녀가 있다. * 방송인 KBS 전 아나운서 [[왕종근]]과 얼굴이 닮았다. * 해태 선수 시절, 광주의 목욕탕에서 김일권을 본 팬들이 증언하기로 [[식스팩]]의 상체, 그리고 굵은 허벅지를 가지고 있었다. * 말을 들어보면 상당히 논리정연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리더쉽, 카리스마, 포용력, 책임감 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해태의 첫 군기반장이었으며 이후 군기반장 계보는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으로 이어진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일섭]]이 술회하기를 명랑운동회[* MBC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9시에 방송했던 프로그램으로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대결하는 포맷이었으며 정동체육관에서 녹화했다.] 녹화 당시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준우승팀 MBC 청룡 두 팀 선수들을 초청해 1983년 12월 24일에 대결했다고 한다. 웃고 즐기자고 녹화하는데 양 팀 선수들은 승부욕이 불타올라 기를 쓰며 이기려 했고 해태가 이기자 연출진에서 자꾸 녹화를 중단시켜 행동대장 겸 군기반장이었던 김일권이 해태 선수단을 철수시키려 했다고 밝혔다. * [[김성한]]이 말하길 여고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선배라고 했으며 곱슬머리, 까만 피부, 그리고 허리에 거의 붙은 엉덩이 등 섹시함으로는 김일권이 최고, 잘생김으로는 김준환과 이상윤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 해태에서 삼미로 이적한 [[신태중]]의 투구에 머리를 맞고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적이 있다. * [[이종범]]이 해태에서 활약하던 1996~97년에 주루코치를 맡았다. 이종범이 [[스톡킹]]에 출연하여 [[https://youtu.be/ifY9bmwL_Uw?si=Imx8i5gyfSEcJQk-|밝히길]] 이종범이 몸을 사리지 않고 주루 플레이를 하자 '야, 몸 사려가면서 뛰어~ 무조건 뛰다가 다치면 너만 손해여. 도루 100개를 하들 뭣하냐~ 해태에서 돈도 더 안 줄껀디'하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고 밝혔다. 김일권이 쌍방울 코치였던 1994년 이종범이 전반기에만 60개가 넘는 도루를 했고 100도루를 꿈꿨지만 그 조언을 듣고 후반기에는 도루를 줄여서 84개로 마무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