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일성종합대학 (문단 편집) == 사건·사고 == * 1950년 [[평양 전투(1950년)|평양 전투]] 당시 한국군 [[제8보병여단|8연대]] 9중대가 이곳에 [[태극기]]를 게양하기도 했다. * 1956년, 열악한 식사를 견디지 못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학식 개선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에 당황한 총장 유성훈이 급히 고기를 구해와 나누어주는 등 학생들을 달래려 했으나 곧 숙청당했고, 김일성은 학생들을 노동에 강제 동원하면서 저항 조직을 와해했다. * 2015년 5월경 이 대학 캠퍼스에 '''"[[김정은]]은 [[김정일|지 애비]]를 100배 능가하는 살인자다"'''라는 낙서가 발견되어 당국에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결국 범인을 색출한다고 [[평양]]뿐 아니라 [[평성시]]와 [[사리원]] 일대까지 수사를 했었다. 그런데 수사하는 방법이 사람들에게 글씨를 쓰게 한 다음 필체를 비교하는 매우 후진 방법이었다. 필적 감별의 관점에서는 타당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법정이라면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결정적 물증으로 채택될 수는 없으며 범인이 잡혔는지는 알 수 없다. * 북한의 前 외교관이었던 [[고영환]]의 저서 "평양 25시"에 따르면, [[1987년]] 일명 "주패사건"이 터져서 꽤나 말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경제학부의 [[핵심계층]] 자녀 10명이서 [[도박]]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처벌감이 되는데 판이 점점 커지자 달러나 컬러 TV로 시작했던 판이 어느새 여대생까지 끌어오게 되었고, '질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겼는데 끝내 알몸이 된 여대생 옆에서 계속 플레잉 카드로 도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적발되었다. 이게 생각보다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10명은 곧바로 신나게 두들겨맞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학생들은 '우리가 그래도 평등하긴 하구나… 도박 앞에선 얄짤없다.'라고 생각했지만 불과 6개월 후 모두 멀쩡히 복권되었다고 한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김일성대 학생위원회에 이메일을 보내서 기사가 나는 등 관심을 모았다. 서울대 총학에서 2018년 8월 24일에 김일성대에서 온 답장을 공개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2912128|#]] * 김일성종합대학이 독일을 포함한 해외 대학 수십 곳과 협력 관계라고 공지한 것에 대해 독일 대학을 포함한 다수가 이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245306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