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장수 (문단 편집) == 생애 == [[1948년]] [[2월 26일]] [[광주광역시]](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42회)를 나온 뒤에 [[1967년]]에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입학했고 [[1971년]]에 [[임관]]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육군]][[대장(계급)|대장]] [[박선우(군인)|박선우]] [[장군]](일고 50회, 육사 35기)과 [[김용우(1961)|김용우]]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일고 54회, 육사 39기)도 광주일고 출신으로 그의 후배다.] 그는 [[중령]]이었던 [[1987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의 견제를 받아 [[대령]] [[진급]]에서 한 차례 밀려 2차로 진급하기도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2/2013062200230.html|조선일보 기사]][* 참고로 역대 육참 총장들 중 최다 진급 누락자는 그의 전임인 [[남재준]] 전 국정원장. 남 전 원장도 마찬가지로 하나회의 훼방 때문에 옷을 벗을 뻔하다가 [[김영삼 정부]]로 바뀌면서 하나회 청산에 따라 [[권영해]] 국방 장관이 전격적으로 수방사 참모장으로 임명했으며, 얼마 안 가 소장 진급을 가장 먼저 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제6보병사단]] [[사단장]],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제7기동군단|제7군단]] [[군단장]][* 이 당시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 수사를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개소리]]를 해서 욕을 먹었는데 이건 군 특유의 보신주의의 일횐이라는 것이 정설. 지휘관은 임기 중 사건사고를 겪으면 진급이 막히는데 이미 전임 군단장인 이준민 중장이 7군단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은 이력이 있어 김장수 군단장은 자신의 진급이 막힐 것을 우려하여 이런 대응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사건이 덮혀버려서 김장수 군단장은 물론, 당시 염 상사의 소속부대장인 수기사 포병여단장인 [[황인무]] 대령은 후일 중장까지 진급했다.],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2005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2006년]]에는 [[전역]]하여 [[윤광웅]] [[제독]]의 후임으로 [[참여정부]] [[국방장관]]이 되었고[* 현역으로는 국방부장관으로 진출하는 데 거의 필수 보직화 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거치지 않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서 바로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된 첫 케이스이다. 두번째는 [[2020년]] [[문재인 정부]] 3번째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된 [[서욱]] 장군.] [[2007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 꼿꼿한 자세로 악수를 하여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었으나, 처음 목례하고 차렷자세로 악수를 하는 군인식 인사법을 오해한 것으로 당시 사진 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141|#]] [[2008년]] [[한나라당]]의 공천으로 18대 비례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방위에서 활동했다. 다만, 이때 통합민주당의 비례대표 상위순번 제의를 먼저 받아 수락까지 했다가 정치할 뜻이 없다고 다시 사양하고, 그 직후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제의를 수락한 것이 드러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 유일한 유임 대상자로 거론되었긴 했다.]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초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박근혜정부의 출범 이후 [[북한]]의 전쟁위협 발언과 [[개성공단]] 차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에 따른 [[이어도]] 포함 문제 등을 비롯한 일련의 안보현안들을 잘 대응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4년]]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응과 무관하다"고 발언한 것이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1년 3개월여 만에 [[국가안보실장]] 직을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넘겨주고 물러났다.[* 김장수가 국방장관이던 시절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으로 재직했던 김관진의 후임 국방장관에는 육군대장 [[한민구]] 장군이 임명되었는데, 김관진 실장이 2010년 연평도 포격전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될 당시 합참의장이었다. ~~김장수-김관진-한민구의 돌고도는 3각 순환보직, 인물이 없긴 없나보다.~~][* 김장수가 육군참모총장을 하던 시절에 [[김관진]]은 육군본부 예하의 제3야전군사령관, [[김근태(군인)|김근태]]는 제3야전군 예하의 제7기동군단장, [[박정이]]는 제7기동군단 예하의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을 해서 넷이 서로 직속관계였다. 그리고 저 네 사람 다 대장 진급에 성공했다.] 이후 [[2015년]] [[2월]] [[권영세(1959)|권영세]][*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났다.]의 뒤를 이어 주중 대사로 내정되었다. 국방장관 출신으로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며, 4강에 해당하는 주요국가 파견 대사로도 과거 [[대만]] 대사였던 [[김정렬(1917)|김정렬]] 전 국방장관 이후 50여 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사드배치 때문에 [[왕이(외교관)|왕이]]한테 맨날 불려가 협박당하는 고역을 치르고 있다. 2018년 3월 28일 세월호 사고 보고조작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아들인 김용우[* [[김용우(1961)|동명이인]]이 김장수의 광주일고-육사 직속 후배인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이다.]도 [[육군사관학교]] 62기로 임관하여 2대째 육군 [[장교]]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육사 35기수 선배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그냥 육사 출신도 아니고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서 위탁교육까지 받고 온 사람이다. 이렇게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외국 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귀국해서 임관한 사람들은 진급이 빠르다는 육사 출신 중에서도 더 진급이 수월하다. [[김태영(군인)|김태영]], [[김관진]]도 그런 유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