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재훈(농구) (문단 편집) === 실업-프로 시절 === 대학 4학년때 출장시간이 줄어든 탓인지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 입단 첫해에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최병식]]-[[정경호(농구)|정경호]] 등에 밀려 벤치에 머물렀다. 하지만 2년차때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 뒤, 대학시절의 활발한 움직임을 다시 보여주며 [[조동기]]와 함께 상무의 골밑을 지켰고, 당시 호화 멤버였던[* 군입대 동기로 [[이상민(농구)|이상민]], [[문경은]], [[조성원]], [[홍사붕]], [[김승기(농구)|김승기]] 등이 있었다.] 상무를 [[1995-96 농구대잔치|1995-96]], [[1996-97 농구대잔치]] 결승에 연속으로 올려놓지만, 각각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연세대를 만나 [[김유택]], [[서장훈]]에게 골밑을 털리며 준우승하고 만다. 상무 제대 후 [[이상민(농구)|이상민]], [[조성원]]과 함께 원소속팀 [[전주 KCC 이지스|대전 현대 다이넷]]에 합류한 김재훈은, 팀의 막강 외국인 빅맨들([[조니 맥도웰]]-제이 웹-[[재키 존스]]-로렌조 홀)에 밀려 백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대전 현대에서 총 세 시즌을 뛰며 두 차례 우승 반지를 얻었지만 정작 팀내 비중은 미미했고, 1999-2000 시즌 종료 후 소속팀 대전 현대가 정재근을 얻기 위해 김재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면서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로 이적하게 된다. [[파일:안양 SBS 시절의 김재훈 2001-02시즌.jpg]]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입단 초반엔 당시 김인건 감독의 신임을 얻으며 [[김성철(농구)|김성철]]과 주전 쌍포로 출전하기도 했으나, 2000-01 시즌 중반부터 팀이 "트리플 포스트"[* 데니스 에드워즈(192cm)-[[표필상]](200cm)-[[리온 데릭스]](205cm)의 빅맨 3명을 동시에 출전시키는 전략.]라는 변칙 작전을 사용하면서 다시 식스맨으로 밀렸다. 하지만 이시절 3점슛을 완전히 장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2000-01 시즌 3점 성공률: 38.1%. 경기당 0.91개 성공.] 빅맨에서 3번으로의 포지션 변경에 완전히 성공했고, 두 시즌 동안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의 키 식스맨으로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맹활약, 유력한 식스맨상 후보로 꼽히기도 했으나, 2000-01 시즌엔 우승팀 멤버 [[강혁(농구)|강혁]]([[서울 삼성]])에게, 2001-02 시즌엔 "토털 농구" 돌풍의 주역 정재근(전주 KCC)에 밀렸다.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에서의 두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김재훈은 좀 더 많이 뛰기 위해 연봉 1억 1,500만원에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지만, 여기서도 부동의 주전 [[김영만(농구)|김영만]]에 밀린데다 키 식스맨 자리를 두고 신예 [[송영진(농구)|송영진]]과 경쟁을 펼치면서 오히려 출전 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결국 2004-05 시즌 중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와 2:2 트레이드(김재훈, [[정진영(농구)|정진영]] ↔ [[김훈(농구)|김훈]], 김동언)로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했다가 여기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에 다시 서동용과 맞트레이드로 [[서울 SK 나이츠|서울 SK]]로 이적하는 등, [[저니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울 SK 나이츠]]에서도 [[문경은]], [[전희철]], ~~[[방성윤]]~~ 등 호화 멤버들에 밀리며 출장 기회를 잡지못하던 김재훈은 2005-06 시즌 중반 가드 [[강대협]]과의 트레이드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합류하게 된다. [[파일:김재훈 모비스 선수.jpg]]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는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이 신세는 마치 [[우지원]]과 함께 벤치에서 후배들을 독려하게 된다. [[우지원]]과는 다르게 스타 출신이 아닌지 빠르게 적응하게 된다. [[양동근(농구)|양동근]]-[[크리스 윌리엄스]] 듀오가 뛰던 정규리그 1위팀 울산 모비스에서 당시 만 34세이던 김재훈은 "2쿼터의 사나이"로 자리매김하며 마지막 기회를 잡게 된다. [[양동근(농구)|양동근]]-[[크리스 윌리엄스|윌리엄스]] 콤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골밑에 약점이 있던 울산 모비스는 외국인 선수가 1명만 뛰는 2쿼터에 공격이 필요할 땐 [[김동우(농구)|김동우]]를, 센터 수비가 필요할 땐 [[이창수]]를, 그리고 내외곽 전천후 수비가 필요할 땐 3.5번인 김재훈을 내세우는 전략으로 나섰고, 김재훈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출전할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6-07 시즌부터는 3쿼터에도 외국인 선수 1명 출전으로 제한되면서 김재훈은 출장 시간이 좀더 늘어났고, 특히 이 시즌 챔프전에서는 상대팀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의 장신 포워드 송영진을 밀착마크하며[* 정규리그에서 평균 13.7점을 기록하던 송영진을 챔프전 평균 9.8점으로 막았다. 특히 챔프전 4차전에서는 송영진을 2점으로 막아냈다.]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모비스는 KTF를 7차전 접전 끝에 꺾고 우승하였는데, 부산 기아 시절 이후 10년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7-08 시즌 한 시즌을 더 뛴 김재훈은 2008년 팀의 코치 제안을 받으면서 선수에서 은퇴한다. 외국인 선수가 없었다면 기회는 좀 더 받지 않았을까 싶은 선수였다. --[[이충희|돌충희]]가 [[신선우]]의 [[버나드 블런트|통수만 치지 않았어도]] [[정재헌(농구)|정재헌]], [[강병수]]같은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다만, 우승복은 있어서 반지 3개는 챙기고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