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남(북한) (문단 편집) == 여담 == * [[싱가포르]] 교민에 의하면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고 간혹 [[프랑스]]에도 가며 인터뷰 당시에는 쭉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강명도]] 씨에 의하면 김정남의 북한 여권은 기한 만료로 말소되었기 때문에 중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 여권으로는 입국이 아예 안 되는 나라가 많은데 싱가포르만 해도 북한인은 비자를 받고 들어와야 하고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중국 여권도 외국 입국은 까다로운 편이지만 불량국가는 아니다. 아울러 [[카더라]]로 중국 정부가 보호하고 있다는 말과 김정남이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했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2007년에는 [[홍콩]]에 입국하려다 거부당했다. * 자신이 평양의 몇몇 주요 건물을 설계하기도 하고, 조선콤퓨터쎈터 설립을 주도하는 등 북한의 각종 정보기술 산업정책을 맡아왔다고 알려졌다. * [[상하이 선화]] 팬으로 알려져있다. 과거 자기 페북에다 상하이 선화 유니폼과 자켓을 인증했다. * [[외국어]]에 대단히 능숙하다는 말이 있다. 제네바 대학의 학사과정은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여기를 입학하고 졸업하려면 [[DELF]] B2 이상이 필요한 면을 볼 때 김정남의 프랑스어는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유창할 것이다. 사실 대학과정까지 거쳤다면 최소 유럽언어 C1 등급으로 원어민 고등학생 수준에 버금가는 언어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언론에서는 [[독일어]]에 능숙하고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본 기자들이 일본어로 질문하자 일본어로 자신은 일본어를 할 수 없다고 대답한 바가 있으며 일본 기자들과의 이메일 인터뷰 때도 한국말로만 인터뷰했다. 일본을 자주 방문했으니 어느 정도 구사할 가능성은 있으나 역시 유창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어]]의 경우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의사소통을 할수 있는 정도다.[* 다만 그는 영어권에 주재한 적이 거의 없으니 이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말은 많이 어눌하고 발음은 좋지 않지만,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의 말을 전부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이니 영어도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장기 체류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어]]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긴 있다. 실제로 [[광동어]]는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유학생활을 한 적도 있어서 [[러시아어]]도 유창하다.[[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48300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214&aid=0000032310|2007년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 [[https://play-tv.kakao.com/embed/player/cliplink/28921317|2010년 일본방송 출연 모습]] * 위 영상에서 보다시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째 아들이면서도 [[한국어]]로 인터뷰를 할 때 '''거의 [[서울말]]에 가까운 말투'''를 쓴다는 게 특이점. 일설에 의하면 김정남이 해외에서 [[대한민국]]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해왔기 때문에 자연히 말투가 서울말에 가까워졌으며, 한편으로는 한국 방송을 즐겨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가짜 이주일을 알아봤다는 것부터가 이미 남한 말투에 익숙해있다는 증거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말투가 북조선스러운 평양식의 억양이 섞인데 반해 김정남의 말투는 [[서울 사투리]]에 더 가깝다. 사실 그의 어머니 성혜림과 어릴 적부터 가정교사 역할을 해온 이모 성혜랑이 서울 토박이였다는 점, 그리고 출생부터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것을 고려해보면 그가 평양식보다는 서울식 억양을 가진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개의 사용 단어에서 서울말과 거리가 먼 단어를 선택하기도 하여 광복 당시의 서울말에 기초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어의 영향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의 표준어 격인 [[문화어]]는 실질적으로는 경기 방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부 수립 때부터 써오던 말을 '덩거당', '돟다', '했시요' 같은 말을 쓰는 평안도 사투리로 전면적으로 바꾸기에는 어려워서라는 추측이 있다.], 고등 교육의 수혜를 입은 북한 고위층이 일부 단어가 달라 구분이 가능하나 서울 말투 비슷한 억양, 발음으로 말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래 직접 보낸 메일에서 '인차(곧)'라는 서울말에 없던 문화어 고유의 표현을 쓰고 있다. 실제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말투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북한 말투'와는 달리 오히려 서울말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데다, 북한 [[영화]]를 보면 [[배우]]들도 서울말 비슷한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 특히 남자-노역의 경우. 여자-아역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과거에 코미디언 김지선이 흉내내곤 했던, 간드러진 '북한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김정남이 일부러 배우지 않았더라도 '서울말'을 쓰는 데는 별다른 무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 두 번의 [[입국 금지]] 전력이 있다. 첫 번째는 2001년 [[일본]]입국을 시도하다 거부당해 [[베이징]]으로 돌아간 것과 두 번째는 2007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오려다 홍콩 입경처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입국을 거부한 것.[* [[홍콩]]은 대북제재 일환으로 북한인의 취업비자 발급을 엄금하며 단순 관광객도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인 데다 빈곤국이라 불법체류 위험도부터 높기 때문. 북한 외에는 또 다른 불량국가들인 [[이란]], [[시리아]], [[미얀마]], [[쿠바]], [[수단 공화국]], [[소말리아]], [[리비아]] 등이 취업비자 발급 금지 국가이며 중국 본토인의 경우 홍콩이나 영미권에서 대학을 나와야 취업비자가 발급된다.] * 김정남이 피살당한 후, 김정남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생겼고, 김정남에 대해 "친중파였다", "김정남은 개혁개방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김정남은 3대 세습을 비판하였다" 고 하여,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정남이 정말 개혁개방파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친중파였다는 것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아마 중국에서는 북한 정변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고려했을 개연성은 있다,[* 중국의 병아리 계획에 경계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남은 베이징,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중국과 연락하기도 했으며[[https://kr.nknews.org/%EA%B9%80%EC%A0%95%EB%82%A8%EC%9D%80-%EC%99%9C-%EC%A3%BD%EC%96%B4%EC%95%BC-%ED%96%88%EB%82%98-%EC%A0%84%EB%AC%B8%EA%B0%80-7%EC%9D%B8-%EC%84%A4%EB%AC%B8/|#]] 대표적 친중파인 [[장성택]]이 김정남의 후원자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김정남의 죽음 이후, 중국의 반응을 살펴 보면, 김정남의 죽음이 과거 중국이 김정일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남을 지지했고 그 후 김정은이 이에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으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김정남은 친중파이거나 친중파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판단된다.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17/02/107431/|#]] *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radio-world/radioworld-02272017145919.html|김정남 피살후에 그에 대한 북한 여론은 냉정한 평가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증언에 따르면 "김정남은 식당에서 술에 취한 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총을 마구 쏜 적이 있으며[*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강명도]]가 1994년 탈북 이후에 증언한 내용이며, 김정남 본인은 교도통신 고미 요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도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도 말리지 못한 ‘깡패’, 그 자체였다"는 평도 있고, 1990년대의 어려운 시기에 외국에 나가 여기저기에서 여자에 둘러싸여 있던 김정남이 아니냐며 그 김씨 일가 중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잘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김정은을 의식해 표면 상의 여론이 그리 흘러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아니더라도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외국에 나가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김정남에게 좋은 소리를 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김정남의 학창시절 어울려 지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그림을 잘 그리고 유머가 있으며 겸손하고 허풍을 전혀 떨지 않았으며 독재자의 손자, 아들인걸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신사적이고 평범하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9066287|#]] 그리고 또 김정남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중에는 아들인 [[김한솔]]이 개념찬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아버지인 김정남의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밥을 먹을때, 가난한 인민들을 생각하면서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김한솔의 증언이 있었다.[[http://v.media.daum.net/v/20121018162005408|#]] 김정일은 김정남을 매우 아꼈다. 아무래도 남자 입장에서 최초의 자식이자 아들이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성혜림이 김정남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정일은 미친듯이 기뻐하며 벤츠를 직접 몰고 병원까지 오는 내내 클락션을 계속 울려댔다고 할 정도였다. 김정남이 어린 시절에는 김정일은 틈만나면 김정남을 물고빨고 했으며[* 김정일이 등장하는 홈비디오(지금으로 치면 브이로그)에는 김정남이 쉬야 마렵다고 하자 직접 우유곽 같은것을 대고 김정남의 오줌을 직접 받아내는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 인민위원회 대회의장에서 김정일 전용자리의 테이블 위에 앉혀놓고 '나중에 네가 크면 앉을 자리'라고 일러주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성인이 되어가면서 자의반 타의반의 여러가지 일로 차츰 아버지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던 김정남은 유력한 후계자 지위에서는 점점 멀어졌지만 어쨌든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부성애는 결코 지우지 못했고 그 덕에 김정남은 적어도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방탕한 사치를 마음껏 즐기고 살면서 때때로 평양에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김정일의 유언이 '김정남은 나쁜 아이가 아니니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이었을까. 하지만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고 김정일 사후 김정남은 아버지가 꼬박꼬박 쥐어주던 막대한 용돈도 끊기고 북한에 다시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해외에서 뭘 하는지 알 수없는 방랑자 생활을 했다. 5년 이상을 해외에서 두문불출하며 살았는데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대외관련 사업을 해외에서 도우면서 김정은이 던져주는 푼돈(과거 아버지에게 받던 것에 비하면)을 받으며 생활한다는 추측이 있었다. [[아궁이]]에서 김정남을 실제로 만나서 자세히 보았던 [[강명도]]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방송 중 앵커가 "김정남은 어떤 사람이였냐?"라고 강명도에게 묻자 "김정남은 그냥 개망나니였다"고 이야기했다. 젊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게다가 어머니는 비참하게 사망했으며 말 그대로 북한 내에서는 김정일의 아들이기에 감히 그의 성격을 고쳐주거나 지적해줄 사람이 없어 성격이 삐뚤어졌고 말 그대로 개 망나니처럼 살았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 김정남은 '''형이라서 죽었다.''' 그것도 친형이 아닌 '''이복형'''이라서 죽었다. 일단 적자서자를 떠나서 김정남이 [[김정일]]의 '''장남'''이고 그래서 북한 내부에서도 정통성 운운하는 자들은 김정남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이게 자꾸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정은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려는 푸틴도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을 죽여버렸다.] 게다가 그나마 [[김정철|어머니까지 동일한 친형]]이면 이게 좀 덜한데 문제는 김정남과 김정은은 어머니가 다르다. 이런 형국이니 김정은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불편했다.''' 반대로 김정은이 형이고 김정남이 동생이었다면 김정남은 위대한 형님이라면서 계속 김정은을 떠받들어주고 빵셔틀로서 최선을 다하여 비록 북한에는 못 들어올지언정 [[김평일]]처럼 외국 주재 북한 대사로 떠돌더라도 일단 살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동생이었더라면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김정남을 옹립할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정권에 위협을 가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보면 넘사벽으로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김정남이 일찍 태어난 죄로 인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계속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결국 김정은은 그렇게 형을 죽여 없애버렸다. 이후 미국 정보기관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정황상 이를 명분삼아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2021년 북한의 국방관람전시회 '''"자위 2021"''' 에서 김정남으로 보이는 표적을 놓아 화제가 되었다.[[https://twitter.com/kimjonteran/status/1448217987010359298?ref_src=twsrc%5Etfw%7Ctwcamp%5Etweetembed%7Ctwterm%5E1448217987010359298%7Ctwgr%5E%7Ctwcon%5Es1_&ref_url=https%3A%2F%2Fcafe.naver.com%2Fca-fe%2Fcafes%2F10030098%2Farticles%2F353161%3Fpage%3D1inCafeSearch%3DtruesearchBy%3D0query%3DEAB980ECA095EB82A8includeAll%3Dexclude%3Dinclude%3Dexact%3Dsearchdate%3Dallmedia%3D0sortBy%3DdatereferrerAllArticles%3DtrueoldPath%3D2FArticleRead.nhn3Fclubid3D1003009826page3D126inCafeSearch3Dtrue26searchBy3D026query3D25EA25B9258025EC25A0259525EB258225A826includeAll3D26exclude3D26include3D26exact3D26searchdate3Dall26media3D026sortBy3Ddate26articleid3D35316126referrerAllArticles3Dtrue|#]][[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314231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