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남(북한) (문단 편집) === 초기 === 김정남이 태어날 때 할아버지도 [[김현(북한)|득남했다]].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현과 같은 해(1971년)에 태어났다. [[1971년]] [[5월 10일]] 생. [[파일:1209044267975825979359_o.jpg]] 1975년 1월 김정남과 외할머니 김원주의 모습. [[파일:external/pds25.egloos.com/a0098697_55070fb621edd.jpg]] 1981년에 찍힌 김정남의 모습. [[김정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김정남이다. 뒷줄 왼쪽부터 [[성혜랑]](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 성 씨의 자녀 이남옥, [[이한영]]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신동아]] [[성혜림]]의 조카, 김정남의 이종사촌형이자 [[북한이탈주민]]이었던 [[이한영]][*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성혜림이 말년에 [[소련]]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성혜림]]을 [[한국]]으로 데려오고자 하였는데, 성혜림의 존재가 드러나면 북한 체제에 굉장히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데려오기 전에 간첩에게 저격당했다. 다행히 어머니 성혜랑과 여동생은 무사히 탈북해 서방 모처에 은둔 중이다. 성혜림은 2002년에 사망하여 모스크바에 묻혔다.]의 회고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상당히 권위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북한이란 나라는 말만 [[공산주의]] 국가이지 실제로는 [[왕조]] 국가나 다름없는 곳인 데다가 김일성의 친족들을 지칭하는 [[은어(언어학)|은어]]적 명칭이 '로열 패밀리'였을 정도니 말 다한 것이다. 때문에 태어나서 어릴 때에는 김정일의 첫 아들인 만큼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의 가족이 모스크바에서 주소련 외교관 가족들의 모임에 갔는데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보고 북한에서 하던 대로 '''[[집합(군대)|쟤네들 다 오라고 해봐]].''' 하며 명령을 했고 사촌형인 이한영이 여긴 다른 나라라서 함부로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자 잔뜩 삐친 채로 '''[[까라면 까|그래도 오라면 와야 될 거 아냐]]'''라며 가버렸다. 그런가하면 역시 이한영 회고에 나온 얘기인데, 평양 가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졸고 있던 북한 아저씨 한명을 김정남이 다짜고짜 머리를 때리면서 "그렇게 추하게 입벌리면서 자면서 [[북한|공화국]] 망신은 다 시키는구만?"이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웬 꼬맹이가 시비 거는 것에 열받은 아저씨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누구 아들이냐]]고 따지니 어린 김정남은 그 자리에서 ''''[[김정일]]이다!''''라고 답했고, 김정남 뒤에서 서서 죽일 듯이 노려보는 [[보위부]] 간부들을 보고 [[데꿀멍|기겁해서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고 깨갱했다]]고. 실제로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북으로 납치되었던]] [[최은희(배우)|최은희]]가 김정일 생일잔치에 초대받아서 김정남을 소개받고는 김정남에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자기 이름 묻는 사람을 처음 본 김정남이 놀라서 '남의 이름을 다 물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김정일 뒤에 숨어버렸다고 한다.[* 최은희 회고록을 보면 김정남이 대단히 부끄러워했다는데 딱히 악의가 있던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당시 김정남은 김씨 가문의 장남으로 엄연한 백두혈통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거는, 나아가 이름을 묻는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당시 최은희는 김정일이 예술에 대해 견해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솔직한 비평을 해주곤 했는데 김정일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북한 간부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재주가 좋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곧바로 김정일이 김정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른이 말씀하시면 '예 저는 누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거야."라고 타일렀다고. 탈북자인 김금혁의 말에 의하면 방계의 사람이 동기에 있어도 학교에서 대화하는게 한계선이었고 그 방계의 사람은 학교가 마치면 고급 승용차가 와서 어디론가 말도 없이 가버렸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 멀어지면서 총애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도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데 한몫했다는 얘기가 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원래는 김정남이 후계자였으며, 김정은과 김여정은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그들의 유년시절에 있다.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은 김정일을 북한에서 교육시켜서 측근과 인맥을 만들게 하였고 후계자로서 노출시킴으로서 인정받게 만들었는 반면 김정은 남매는 어린시절부터 스위스에 유학을 보낸 탓에 측근과 인맥을 만들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 김정일이 급사했다고는 하더라도 후계자로서 나선지 2년만에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당시 김정남은 이미 사고를 쳐놓은 이후였다는 점이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젊은 시절엔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생활했다고 하며, 북한의 외국인 전용(겸 고위층용) [[나이트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천장에 쏴버렸다. 이에 분노한 [[김정일]]이 허리띠를 뽑아서 그걸로 엄청 때렸다고 한다.[* [[강명도]]著-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에 해당 내용이 나오니 참조 바람. 재밌게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도 이런 일화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다이는 술자리를 빙자해 마음에 안 드는 아버지의 심복을 죽인, 계획 살인을 저지른 거란 점이다.] 저명한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온갖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제외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한영]]은 생전에 김정남이 코미디언 [[이주일]]을 좋아하여 그를 데려오기를 요청했다고 이주일이 진행하던 쇼에 출연해 증언한 바 있다. 이에 이주일과 비슷한 외모의 인물을 데려와 이주일이라고 했지만 단번에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때 거의 유일한 친구는 작은아버지이자 나이가 동갑인 김현이었다. 둘 다 최고 권력자의 혼외자로 동질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커가면서 망신도 당하고 권력 승계에서 멀어지자, 처세의 일환으로 자중하는 듯하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이 정말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자식들을 중립국인 [[스위스]]로 다 피난 시켜 그곳에서 교육시켰다.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모두 스위스에서 학교를 나왔다.]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 [[유럽]]에 체류한 [[엘리트]] 계층이다. [[김정일]]의 첫째 아들이란 점에서 남한에서 한때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적이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것도, 본인이 권력을 얻기 위해 눈을 불을 킨 것도 있지만 [[최현(북한)|최현]] 등이 김정일이 적장자란 이유로 지지한 것도 컸다.] 다만 [[김일성]] 시대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일은 자신의 자식들을 일찍 후계자로 정하지 않고 있어서 김정일만큼은 주목받지 못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가 가장 많은 아들이었기에, 가장 인지도는 있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제왕조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정실 부인이 아닌 유부녀와의 불륜 관계로 태어난 김정남은 종법제에 의하면 이른바 [[사생아]] 혹은 [[서자]] 정도의 위치인지라 계승에 장애물이 있다.[* 김정일의 권력 계승도 김일성의 첫째 부인인 김정숙의 첫째 아들인 적장자의 위치가 크게 작용해 김평일과의 후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 김일성이 아직 힘이 있고, 김정일이 아직 후계자로 내정되지 않았을 땐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일의 권력 계승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덕분에 성혜림의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성혜림과의 관계가 짧았기도 해, 결과적으로 오랜시간 실질적 안주인이였던 [[고용희]] 소생인 [[김정은]]이 권력 계승에 성공하였다. 더불어 김정은 역시 [[고용희]] 미화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시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