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남(축구인) (문단 편집) == 지도자 경력 == 선수 [[은퇴]] 후 [[1980년대]] 초, 함흥철 감독을 보좌하며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수행했다. 이 때 이미 전술적인 부분은 김정남이 담당했다고 한다. [[1983년]]부터는 [[제주 유나이티드|유공 코끼리]]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86년]]에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멕시코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1954스위스월드컵]] 16개국 본선 진출 이후 '''32년만에 86멕시코월드컵 24강 본선으로 이끌었다.''' 사실 대표팀이 출범할 때는 수석코치였는데, 지역예선 도중 [[문정식]] 감독이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전 패배로 [[경질]]되면서 그 자리를 승계한 것이었다. 이후 24강 본선에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한 조가 되는 어려운 조에 속했다. 사실 당시 월드컵은 32강이 아닌 '''24강''' 본선 진출이기 때문에 아시아는 월드컵 진출 티켓이 단 2장이었고, 24강 조별리그 체제까지는 북중미,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팀들이 서로 같은 조에 편성되기가 어려웠던 만큼 지금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디펜딩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 우승팀, 불가리아는[* 유럽예선에서 프랑스를 2:0으로 승리하였고 유고, 동독을 제치고 1986년 월드컵 24강 본선에 진출하였고, 1차전에서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와 1:1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며 이 대회 16강 15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 16강 15위팀'''이라서 운이 없었다. 첫 경기인 아르헨티나전에서 김정남은 일단 적응하기 위해 30분간 수비적으로 운영하라는 지시를 했으나, 선수들이 긴장한 나머지 수비적으로 운영을 하지 않고 지나치게 수비에만 일관하고 몰려다니며 포메이션을 붕괴시키는 등 전혀 경기 운영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2실점을 했다. 이후 후반전에는 오히려 이판사판으로 하자면서 경기력이 좋아졌졌고, 대한민국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다. 불가리아전에서는 수중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대한민국 월드컵 '''첫 승점'''을 획득, 이탈리아전에서는 멕시코 언론마저 심판이 도와줬다고 할 정도로 불리한 판정 아래 '''3:2''' 패배를 했지만 대한민국 '''첫 다득점'''을 기록하며, 월드컵 24강 최종순위에서 '''EPL멤버 북아일랜드'''를 제치고 '''승점 1점 1무 2패 월드컵 20위'''를 기록하였다. 이 때 조 3위도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김정남은 이탈리아전의 1골만 더 기록했으면 다득점에 앞서서 진출 할 수 있었던 패배를 많이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 해 당시 A대표팀 대회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강팀 사우디를 2:0으로 격파하며, 금메달 우승을 차지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당시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팀이었다. 1984년 올림픽 본선 진출, 1984년 아시안컵 우승, 1988년 아시안컵 우승, 1992년 아시안컵 준우승, 1994년 월드컵 16강 12위, 1996년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아시안 게임은 성인 대표팀 출장 무대였는데, 이런 아시아 최고의 팀을 상대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홈경기에서 우승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A대표팀 대회였던, 88서울올림픽 축구 16개국 본선에서도 다시 감독을 하였고, 비록 8강에는 실패했지만, 이 대회 금메달팀 소련에 0:0 클린시트 승점 1점 획득, 미국전 0:0 무승부 승점 1점도 기록하였으나, 아르헨티나에 1:2로 아쉽게 패하여 대회 11위로 선전하였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도 역임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걸어오다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K리그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의 감독을 맡았고, 2006년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 '''도쿄'''에서 J리그 우승팀으로 올라온 감바 오사카를 [[이천수]]의 [[해트트릭]]으로 '''6:0'''으로 격파하였다.[* 한일전 모든 축구 매치 최다점수차 경기이며, 당시 감바 오사카 감독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끈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1.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2.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3.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4.gif|width=100%]][br][[파일:2006 울산 오사카 하이라이트 5.gif|width=100%]]}}} || 그리고 중국 슈퍼 리그 챔프인 다롄 스더를 4:0으로 각각 떡실신 시키며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사우디 챔피언 알 샤밥을 2006년 AFC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6:0으로 발라버리며 '아시아의 깡패'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울산의 짱짱한 스쿼드를 가지고 수비 축구를 한다는 비아냥을 사곤 했지만, 언제나 팀을 상위권에 올리곤 했기 때문에 울산현대의 팬들 입장에서는 [[단어]] 그대로 "시원섭섭" 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한창 이름을 날리 시절에는 [[허정무]]와 함께 [[노잼|재미없는]] 축구의 대명사로 군림했었는데, '''"그래도 김정남은 재미없어도 결과보면 이겨있잖아, [[무재배|근데 허정무는 아니잖아(...)]]"'''라며 무승부에 취한 [[전남 드래곤즈|전남]] 팬들이 울산 팬들을 부러워하는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K리그]]가 [[뻥축구]]에 수비축구라는 편견을 [[일반인]]들이 가지는데 한몫한 감독 중 하나. 이후 울산은 어떻게 된 건지 [[김호곤|감독이 바뀌어도]] 팀컬러가 수비지향이 되어 버렸다.--그리고 아예 철퇴축구로 진화했다(...).-- 그래도 이 분이 [[무능]]하지는 않기에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팀 상태만큼 성적을 내 주는 감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K리그에서 유일하게 별 탈 없이 [[이천수]]를 제어했던 감독이었다'''. [[전남 드래곤즈|전남]],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 [[인천 유나이티드|인천]],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 [[페예노르트|네덜란드]], [[알 나스르 FC|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팀 프런트, 감독, 선수들과 온갖 잡음이 있었지만, '''김정남 감독 아래에 있던 시절에는 정말 순한 한 마리의 양이었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를 제대로 제어한 덕택에 2005 시즌 울산은 K리그 우승을 비롯 탄탄대로를 걸을 수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유상철, --최성국-- 등 한 성격 한다는 선수들도 손쉽게 제어하는 등 그야말로 선수 기강을 잘 잡는 감독이었다. [[2000년대]] K리그에서의 김정남 감독을 본 축구팬들은 거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만 봤기에 상상이 가기 힘들지만, [[2013년]] 방송된 '태극전사의 탄생'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1986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김정남 감독이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치는 모습과 함께 그 당시 선수였던 축구인들이 [[별명]]이 '광기'였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울산 현대 감독을 맡았던 [[2001년]]에는 선수단에게, 외국인 선수도 예외 없이 포함해서 [[해병대]]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50892|#]] 그렇긴 해도 본래 축구계에서 부드러운 성격이었긴 한 것 같다.[* 김호 김정남과 동세대인 이세연이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펀칭을 하면서 주먹으로 동시에 공격수의 얼굴을 쳐서 치아를 날렸다는 시대였다.]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제주 유나이티드|유공 코끼리]]의 감독 재임 중에 [[1989년]]에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유공-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어지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유일의 K리그 우승 기록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울산 현대|울산]] 감독 재임 중에 2005년에 한 번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