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일/생애 (문단 편집) === 급한 후계자 선정 (2009~2011) === 김정일이 뇌졸중으로부터 의식을 회복한 후 처음 당면한 문제가 후계 문제였다. 이에 김정일은 병상 곁에 근심스럽게 서 있는 사람들, 즉 황순희, [[김옥]] 그리고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까지 내보내고 [[장성택]], [[김경희(1946)|김경희]] 부부만을 남게 했다. 그러고는 바로 ‘혁명의 후계자’를 누구로 해야 하는가 물었다. 김경희는 이때 이미 술과 마약 중독으로 몸과 마음이 쇠약한 상태였기에 그녀는 말없이 남편을 쳐다보았다. [[장성택]]은 평소 김정일이 마음을 두고 있는 쪽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보기에도 해외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김정남(북한)|김정남]]이나 유약한 [[김정철]]보다 [[김정은]]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 [[김정은]]을 잘 보좌하면서 천천히 자신이 구상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이에 장성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김정은|막내]] 아드님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김정일]]은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얼굴에 안도와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고 하며, 한참 만에 김정일이 말했다. > '그래, [[김정은|막내]]를 세웁시다. 그러나 내가 공개하라고 할 때까지 이것은 비밀로 하십시오' 그 후 김정일은 군부대나 당 중앙위원회 행사들에 김정은을 동반해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성택의 길 232 페이지] 훗날 밝혀지기로는 한미 정보당국도 김정일이 오래 못살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 기사에 의하면 2008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그의 머리 부위에 대한 CT(컴퓨터단층촬영) 한미 정보당국이 자료를 입수했으며 이를 토대로 그의 여생을 3~5년으로 판단했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한 적도 있다.[[https://www.yna.co.kr/view/AKR20161223028300073|#]] 당시 김정일이 쓰러진 직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그의 CT 스캔 영상을 입수, 뇌 상태를 상세히 검토한 뒤 '여생이 3~5년'이라고 판단했었다. 그 이유는 3~5년 이내 뇌졸중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 그 이유였으며, 김정일의 병세로 봤을 때 재발할 경우 '연명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미국의 기자 2명이 북한 국경에서 납치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빌 클린턴이 방북했을때 김정일을 만났는데 수행원 중에는 클린턴의 주치의가 있었고 그는 김정일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종합해본 결론은 길어야 3년 정도였다고.. 참고로 미국은 오래 전부터 각국의 독재자들의 건강을 파악해왔는데 가령 소련의 브레주네프의 죽음도 예측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김정일이 당뇨병을 앓아온 것도 파악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정일이 2008년 11월 회복한 뒤 김정은에 대한 권력승계 작업에 매진했고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기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잇따라 방문했지만, 권력승계를 둘러싼 스트레스가 결과적으로 수명을 단축시켰다”고 한다. 당시에 [[이명박 정부]]가 갑작스럽게 통일을 강조하며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북한 붕괴론을 확산시킨 데는 이 같은 정보판단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6월 2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한밤 중에 그렇게 올 것이기 때문에 항상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오해를 살까 봐 말을 안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에는 뜬금없는 북한 붕괴론이란 지적이 많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불과 6개월 뒤인 2011년 12월 17일 갑자기 사망하며 3~5년 안에 사망할 것이라는 2008년 한미 양국의 예측이 적중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이명박정부는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에 대해 큰 기대감이 없었기에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하자는 어젠다를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더라도 김 전 위원장의 심각한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당국의 한 인사는 “이명박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정권이 붕괴될 걸로 봤다”며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말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12240423071874|#]] [[주성하]] 기자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밝히기를 만약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이 발병했을 때 사망했다면 현재의 북한이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김정은]]은 김정일의 뒤를 이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오히려 장성택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집권에 성공했거나 장성택 집권 이후 군부의 반발로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 독재로 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2009년]] 들어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설이 파다해지고 3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설이 돌았다. 그런데 [[2010년]] [[1월 9일]]에는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80758|'북한 인민 생활에는 걸린 것(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발언은 김일성의 [[1994년]]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 선언, [[1996년]] 김일성종합대학 연설의 '식량 부족으로 무정부상태가 되고 있다' 발언 등으로 유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난의 행군]]을 어찌되었건 북한 내에서 공식적으로는 마무리하고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주장하며 '나름대로 살 만하다' 는 주장을 하던 와중에 나온 것은 상당히 의외. 아무튼 자신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체감한 김정일은 [[2010년]] 들어서 자국 내 지지 기반이 약한 [[김정은|아들내미]]의 안정적 승계를 위해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껀수들을 벌어와서 그 공을 아들에게 먹여주는 식으로 뛰었다고 한다. 저리도 열심히 뛰었던 걸 보면, '저 정도 노력을 좀 더 일찍 북한 주민들을 위해 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다만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김정일의 악마적 면모를 생각하면 그저 별 의미 없는 푸념에 불과하니 씁쓸한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