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국(야구) (문단 편집) == 여담 == *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현역 선수로서 [[해태 타이거즈]]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동시에 입어본[*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으로는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에 이어 4번째지만 앞의 셋은 1980~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최초의 감독이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2001년 7월 29일 해태라는 이름의 마지막 경기[* vs [[삼성 라이온즈]]전(광주)]의 1번 타자[*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라인업은 1번 김종국-2번 [[최익성]]-3번 [[장성호]]-4번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산토스]]-5번 [[신동주(야구)|신동주]]-6번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7번 [[김창희(야구)|김창희]]-8번 [[김상훈(1977)|김상훈]]-9번 [[홍세완]] 이었다.]였다. * 이외에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선수 출신 중 처음으로 프로 팀 감독을 달았다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대표팀의 주전 2루수였기 때문. 감독 선임 직후 시점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으나, 2022 시즌 후 같이 WBC 엔트리에 있었던 [[이승엽]]과 [[박진만]]이 각각 두산과 삼성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유일한 사례는 아니게 됐다. * 외국인 선수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시절과 해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KIA 인수 초창기에는 [[군기반장]]이었으며[* 해태 시절까지 포함하면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 순으로 군기반장 계보가 이어진다.]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광주일고 후배인 [[이호준]]은[* 고교 기수로 보면 이호준이 2년 후배지만 해태 입단 연번으로 치면 1994년에 입단한 이호준이 1996년에 입단한 김종국보다 더 먼저다. 이호준은 고졸로 입단했고 김종국은 대졸로 입단했기 때문. 그러나 프로 경력이 아닌 나이로 선후배를 가르는 야구계 특성 때문에 이호준은 김종국을 깍듯이 선배로 모셨다고 한다.]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특히 김종국에게 많이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 이호준이 한 말은 "내가 1학년 때였는데 3학년 형들은 타격감이 떨어질 때면 여지없이 1학년 후배들을 인간 타이어로 삼아서 방망이로 때렸다. 참고로 그때 3학년이 재홍이 형이었다. 펀치력이 셌던 재홍이 형에게 맞을 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고 하니까 옆에서 스윙 연습하던 [[박재홍(야구)|박재홍]]이 갑자기 째려보며 "야! 누가 그러면 진짜 내가 때린 줄 알잖아~"하고 푸념섞인 원망을 했다. 그러자 당황한 이호준이 타겟을 바꿔 "재홍이 형한테는 한 대도 안 맞았다"면서 "종국이 형한테는 많이 맞았지"라고 말을 바꾼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성격을 바꾼 듯, 점잖은 학구파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2009년 한국시리즈]] 때 사람들이 놀란 것이다.] 선수 생활 말년에도 그 기질이 있었는지 말년에 잠깐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최경환(야구)|최경환]]도 [[박명환]]의 유튜브 채널인 [[박명환야구TV]]에 나와 관련 이야기를 풀었는데, 당시에도 김종국이 후배들의 기강을 굉장히 잘 잡았다라고 회상했다. [[https://youtu.be/UwdAaL3fIWE?t=873|출처]] 본인이 갸티비에서 말하길 자신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프로 선수면 프로 선수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기강을 잡았다고 밝혔다. * [[별명]]으로는 동명이인 가수 [[김종국]]이 부른 노래 제목에서 유래한 '한남자'가 있으며 잘할 때는 '한남신'으로 업그레이드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플레이가 달라졌다고 해서 '딴남자'라고도 불렸는데, 타격 센스가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크지만, 바로 전년도에 1년에 에러 2개[* 참고로 이 기록은 '''역대 2루수 1시즌 최소 실책 타이기록'''이다.] 밖에 안 냈던 선수가 한 경기에서 에러 2개를 저질러 '''악마와 거래를 해서 타격과 수비를 바꿨다'''는 말이 나온데서 나온 별명이다. 이외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돌출된 입과 고글 때문에 '제트오리', '고글덕' 등의 별명도 있었으며, 국제전에서 특히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국제용 2루수'로도 불렸다. 이래저래 야구에서 [[지명타자]]도 있듯이 지명수비제도가 있었다면 [[이종열]], [[김재걸]]과 더불어 주가가 더 높았을 선수였다. [[파일:external/www.tigers.co.kr/1183.jpg]] * 원래는 안경을 쓰고 플레이했으나, 은퇴 후 코치가 된 뒤로는 김종국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이 사라졌다. 라식 수술을 받은 뒤로 안경과 작별했다고. 다만 감독 취임 이후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고 마스크까지 같이 착용해서 경기 중에는 아예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리고 있다. * 김종국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16번은 김종국의 은퇴 후, [[김건한|김희걸]]이 가져갔으나[* 참고로 이 번호를 탐내던 또 다른 KIA 선수는 [[김주형|짐짝]].] 2012년 시즌 중반에 삼성과 이뤄진 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온 [[조영훈]]이 16번을 달게 되었다. 조영훈이 안경을 쓰고 16번을 단 모습이 김종국과 유사해 일부 KIA팬들은 흥분하였다. [[파일:attachment/one_guy.png]] 그리고 두 사람을 같이 세우고 보니 좀 닮았다. 물론 [[조영훈]]은 왼손잡이 [[좌투좌타]], 김종국은 오른손잡이 [[우투우타]]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조영훈]]이 2012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으로 이적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 앞서 나왔던 것처럼 곱상했던 20대 시절엔 해태 시절이나 KIA나 아저씨 팬 비중이 높은 타이거즈 선수치고 여성 팬이 많은 편이었다. 은퇴한 후에도 종국 코치를 연호하는 여성 팬들이 보이는 편이다. [[홍세완]]이 김종국의 여성 팬과 결혼했고 본인도 이것을 뿌듯하게 생각한 듯. [[http://cafe.naver.com/kiaace28/59|여기]] * [[마구마구]]에서는 3슬롯에 [[하이점프캐치]]를 단 준수한 레전드 카드로, 타이거즈 계열 세트덱에서는 필수 카드였"지만" 1999 홍현우 엘리트 카드 베테랑이 가능해지면서 290만 거니를 호가하던 카드에서 50~60만 거니 선에 거래되는 쩌리로 전락했다. 물론 지금도 간간히 쓰고 있기는 하지만... * 2002년 말에 다섯살 연하의 신부와 결혼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2120370122#Redyho|관련기사1]][[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2120370122#Redyho|관련기사2]] * [[신윤호(1975)|신윤호]]가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현역시절 본인 상대로 잘 쳤던 타자 3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다른 2명은 [[전준호(1969)|전준호]], [[안경현]].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언급하기를, 수비력은 최고였으나 타력이 좋지 않아 본인이 타격코치 시절 열정적으로 가르쳐서 2할 1푼대의 타율은 2할 7푼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김성한이 나가자마자 타율이 원상복귀되었다는 것이 함정. * [[선동열]], [[김기태(1969)|김기태]]에 이어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3번째로 팀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옛 광역 연고권인 [[전라도]] 전체로 역대 타이거즈 감독의 출신지 범위를 넓히면 해태 원년 멤버였던 전북 군산 출신 [[김성한]] 전 감독도 포함된다.] 공교롭게도 선동열, 김기태, 김종국 모두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 [[LG 트윈스]]의 [[류지현(야구)|류지현]]과 함께 역대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순혈성 끝판왕이다.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지역 최고 명문 야구부인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를 나왔다. 또한, 제2의 [[이종범]]으로 기대를 받으며 최고 명문팀이던 [[해태 타이거즈]]에 1차지명되었고, [[김응용]] 감독의 지도 하에 [[1996년 한국시리즈]],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왕조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힘을 더했다. 이후 모기업이 [[KIA]]로 바뀐 후에도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고, 2010년 은퇴 후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쉼 없이 코치 생활을 하였으며, 2017년엔 코치로도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2022년에는 팀의 감독에까지 취임하며 순혈성에 정점을 찍었다.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 재학 4년을 제외하면 모든 야구 인생을 광주와 KIA에서 보낸 셈. 그리고 애초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모교 고려대학교가 구단 내에서는 순혈라인이다.[* 과거 2014 시즌 종료 후 임기만료로 물러날 줄 알았던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이 이뤄졌을 때 정의선 당시 부회장 지시로 맺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유 중 하나가 선동열이 고대 출신 선배이기에 밀어줬다는 사유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정리하자면 선수 시절에 팀에 기여한 바가 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모기업이 바뀌기 전후의 우승을 모두 경험하였고, 팀의 왕조의 막바지를 함께하였으며, 코치 시절에도 우승을 경험하였다. 더불어 코치 시절까지 이적이 없는 [[원클럽맨]]에다 연고지역 출신에 지역 최고 명문 출신의 [[로컬 보이]]까지 해당한다. * 비슷한 시기에 단장으로 함께 부임한 [[장정석]]과는 1973년생 동갑이며 1996년 프로 데뷔 동기이기도 하다. 2002년 장정석이 현대에서 KIA로 트레이드된 후 3시즌간 KIA에서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었다. 장정석은 김종국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하며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109&aid=0004522145|선수 시절 3년 동안 함께 해보니 결단력도 있고,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는데도 후배들이 진심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았다. 실질적인 리더였다]]"고 회상했다.[* 08~09년간 같이 선수생활을 하던 최경환에 따르면, 평소엔 조용하나 분위기를 잡을 땐 확실히 하는 스타일의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 감독 생활 중 2022 시즌에 선수 기용에 아쉬움을 보이며 KIA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 광주일고 동기 [[박재홍(야구)|박재홍]]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으나 둘의 사이는 세간의 평과 달리 좋은 편이다.[[https://blog.naver.com/insidepitch/222777996820|이태일 기자 블로그]] [[스톡킹]]에 박재홍이 출연할 당시 박재홍은 김종국의 수비력이 탄탄했다고 칭찬했고 반대로 김종국은 '박재홍은 공,수,주 3면 모두 완벽했고 그야말로 야구천재'였다고 밝혔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박경태(야구)|박경태]]가 술회하기를 박경태가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합숙소를 무단 이탈하자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