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오 (문단 편집) ==== 화려한 전공(戰功) ====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6사단]]을 지휘, [[춘천-홍천 전투]]에서 사단 작전지역 내에 존재하는 천연 장애물인 [[소양강]]과 [[북한강]], 홍천 큰말고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선인민군]]의 남진을 저지, '''[[북한]]의 전쟁 초기 전략을 좌절시키고 동시에 국군 [[주력 부대]]들이 [[한강 방어선 전투|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사령부|UN군]]이 참전할 수 있을 시간을 버는 데 기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향후 전쟁의 양상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마련되었는데, '''이미 상황이 끝나 UN군이 참전할 가치를 못 느꼈다면 대한민국은 현존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니 그의 공로는 대단히 크다.''' 이후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지연전을 계속 벌이던 와중 일어난 [[동락리 전투]](음성무극리전투)에서 휘하 7연대[* 현재의 [[제7보병여단]]. 6.25전쟁 발발 이전부터 현재까지 편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부대이다.] 2대대[* 음성무극전승대대]가 단독으로 적 1개 연대를 기습, 전멸시켜 승리로 이끌었다. 참고로 이 전투는 국군이 최초로 인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그 뒤 계속 남하하며 수안보, 이화령 전투 등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계속 지연시켰고, 이러한 전공을 인정받아 그는 1950년 7월 15일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그 뒤 [[낙동강]] 부근에 최후의 방어선이 형성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영천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의 6사단은 신녕(新寧) 지구에서 북한군 8사단의 공세를 안정적으로 저지하여 우인접 영천 방면의 아군이 실시할 반격작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공헌했다. 덕분에 [[김일성]]이 직접 '''남조선의 사단 중 제대로 된 사단은 6사단밖에 없으니 그걸 깨부셔야 한다!'''는 언급을 할 정도로 피아 모두에게 유명해졌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국군과 UN군이 북진을 공격적으로 하는 와중 7연대 1대대가 10월 26일에 최초로 압록강변 초산을 점령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나[* 사실 국군 사단 중 압록강변까지 도달한 부대는 이 연대를 제외하면 없기에 지금도 6사단 내에서 초산 연대로 별칭된다.] 이 무렵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후송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