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호(야구선수) (문단 편집) == 여담 == *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선 이상하게도 뜬금포 홈런을 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9회 동점상황에서 결승홈런을 친 적도 있고 생애 첫 만루홈런도 삼성을 상대로 쳤다. 그것도 [[안지만]]을 상대로 때려내었다. * 일반적으로 야구를 시작하는 시기보다 매우 늦은 시기인 서울성수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 6학년, 그것도 청량중학교 시절 중학교 들어가는 겨울방학 때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동네 형이 멋있어 보여서 야구가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덕분에 형은 군대를 다녀온 뒤에야 대학을 갈 수 있었고 누나는 꿈을 포기했어야 할 만큼 가족의 희생이 뒤따랐다고 한다. 참고로 야구부에 들기 전에는 육상부였다.[* 물론 다른 선수들 중에도 중학교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간 선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때 다른 운동부를 하다가 옮기는 케이스이다. 그러나 한 운동을 꾸준히 한 경우보다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농구선수 [[서장훈]]의 경우는 오히려 초등학교 때 쭉 야구를 하다가 중학교에 가서 농구부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부로 바꿔서 대성공한 특이 케이스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15cm가 자라면서 인생이 달라져 버렸다고 한다.] * 건국대 재학 당시 상무와의 경기에서 [[이종욱]]을 보고 잘 치고 잘 달린다고 생각해 롤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2014년 이종욱이 NC 다이노스로 오게 되면서 한 팀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 [[NC 다이노스]] 창단 최초로 등번호 9번을 단 선수이다. NC 다이노스가 [[프로야구 9구단 창단과정|아홉 번째로 창단된 구단]]인 만큼, 구단 내에서 9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응원단장 [[임태현]]과 마스코트 단디의 등번호가 9번이며, 실제 퓨쳐스 리그에 있을 당시에 9번이 비공식 결번이었기에 마케팅을 위해 사용되었을 뿐, 실제 등번호로 9번을 단 선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그와 관련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삼성 라이온즈]]의 [[대주자]] [[강명구]]와 자신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9번을 달라고 했다. 구단에서는 약간 주저하기는 했으나, 당시 지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너무 컸기 때문에'''[* 2013 시즌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야 누구나 다 [[신의 한 수]]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뒷거래설부터 해서 말이 많았던 지명이었다.] 김종호에게 자신감과 책임감을 실어주기 위해서 허락했다고 한다. 참고로 나중에서야 구단 면담을 통해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31105111305776|9번의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 100M를 11.3초에 달릴 수 있는 만큼, 삼성의 전문 대주자 [[강명구]]보다도 빠르다. 참고로 [[이종범]]의 100M 기록이 11초 F, [[김주찬]]이 11.5초, [[이대형]]이 11.23초이다. 삼성에 있을 당시 선수 중에 제일 발이 빨랐다고. 그런데 NC로 온 뒤 자기보다 발 빠른 선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일단 SK에서 대주자로 기용되었던 [[모창민]]보다 김종호의 발이 빠르다. [[이상호(1989)|이상호]] 본인 말로는 자기보다 김종호가 빠르다고 한다. 김종호는 이상호가 자기보다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코치들에 의하면 이상호가 발이 빠르지는 않고 스타트가 좋은 선수라고 하는 것을 보면 김종호가 이상호보다 달리기가 빠를 것으로 보인다. * 원래는 2012년이 지나면 야구를 그만 둘 생각이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께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2011년 11월 22일에 열린 40인 외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 때는 나름 희망을 가졌었으나[* 실제 각 팀 2군 붙박이였던 소위 노망주들은 이 드래프트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기에, 2012년 말 [[NC 다이노스]]의 20인 외 특별지명 때는 쉬는 날이었는데도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고. 그날 기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NC에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착각했거나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로 지명되었다! 댓글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를 악물고 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그 때 일이 기억에 남는 듯 하다. * [[김경문]] 감독은 1번 타자가 지명타자인 것을 알게 된 뒤 김종호에게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24545|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경문 감독의 말과 달리 실제로 김종호가 1번 지명타자로 나온 경기는 2012년 1경기 밖에 없었다. 지명타자로 많이 나왔던 2011년의 경우엔 1번 타자로 출장한 적이 전혀 없었고, 주로 3번 타자로 나왔다. 2012년의 경우엔 중견수로 많이 나왔고, 타순은 주로 5번이나 6번에 배치되었다.] 당시 팔꿈치 부상 때문에 수비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득이 된 셈. 김종호 본인도 NC에 지명되고 싶었던 데다가 NC 측 코치로부터 늘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었기에, 땅볼 타구를 치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프런트 및 스카우터가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삼성 라이온즈]]의 수많은 선수 중에서 20인 외 특별지명 선수로 뽑혔다. 2차 드래프트에서도 외면받았던 선수가 10억짜리 가치를 지닌 선수가 된 셈이다. 그리고, '''[[NC 다이노스/2013년|2013]] 시즌을 통해 진짜로 10억 값을 했다'''. * 삼성 때 별명은 [[제시카(가수)|제시카]]였다. [[제시카(가수)|제시카]]처럼 패대기 송구를 해서 붙은 별명이다. NC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아서 종종 패대기 송구를 볼 수 있다. NC에서의 별명으로는 김종호날두[* 이 별명을 들은 뒤 호날두가 흑인이냐며 되물었다.], 갓종호, 줄여서 갓종이 있다. 본인도 별명을 알고 있는데, 갓종호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알려줬다고 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 갓이 뭔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신]]이라는 걸 알았다고. 8월 중후반부터 부진하기 시작하면서 김종호구, 줄여서 호구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 외 기아와의 경기에서 어깨에 공을 맞고 픽 쓰러진 일 때문에 캔디, 김종호의 '저는 한 명만 기다려서요,'라는 멘트를 남긴 유명한 팬 때문에 김한명, 경기 전날 술을 먹으러 간 일 때문에 술과 호구가 결합해 술호구 등 별명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도 [[NC 다이노스 갤러리]]에 가면 김종호는 호구로 불리고 있을 지경. 심하면 벤치 지키는 게 더 낫다는 뜻으로 [[토템#s-9]]으로 불리기까지도 했다. 애초에 잘하지 못했으면 호구고 뭐고 [[무관심|그냥 묻혔을 것이니까]]. 그 외 김종머시기로도 불리고 있다. 2015년에는 갓종과 호구를 합친 갓구라고 불리고 있다. * 같은 팀 동료 [[임창민]]과 비슷한 외모를 지녔고, 확 띄는 미남상은 아닌데, 마초 분위기 풍기는 짙은 수염자국이나 특유의 눈빛으로 나름 팬도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