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훈(1972) (문단 편집) == 여담 == * [[임창용]], [[진갑용]]과 마찬가지로 타 팀에서 데뷔했다가 이적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가 된 케이스 중 한명이다. * 여러모로 '''3'''번과의 인연이 많다. 특히 3(삼)성에서의 등번호 3번, 롯데에서의 3년, 해당 팀이 3번의 한국시리즈 도전 끝에 우승,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3년 뒤에 우승, 3번 우승, 3번 준우승(롯데 시절 포함) 기록. 등등 3(삼)종훈 3(삼)총사의 경우 위에 서술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롯데 시절에 달던 39번은 3의 13배다.(트레이드된 후 [[박석진]]이 이어받았다.) 흠좀무. * 본의는 아니지만 트레이드되어 특정 해당 선수의 인생을 망가뜨린 적이 있는데 저니맨이 된 중고 신인왕인 내야수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가 예.[* 다만 트레이드 과정에서 외야수가 필요한 삼성과 투수가 필요했던 롯데와의 트레이드가 잘 맞아서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롯데도 [[박석진]]을 받아와서 몇 년간 전천후 투수로 잘 써먹었기 때문.] 이는 나중에 외야수 [[김창희(야구)|김창희]]가 기믹을 물려받았다.[* 해당 항목 1번 참조.] 아이러니하게도 둘다 전력분석원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창희는 그의 후임이다. * 한 치매 노인을 위해 베푼 선행이 뒤늦게 알려졌다.[[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09&aid=0003557287|#]] 때는 2014년 10월, 밤늦게 차를 몰고 경산 압량읍 인근을 지나다가 한 할머니가 길을 헤메고 있는 걸 보고 인근 파출소에 모셔다 드린 뒤 가족들에게 인계해드렸는데, 할머니의 가족들이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하며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이후 2017년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온 뒤 할머니 가족들이 우연히 TV중계를 통해 김종훈 코치를 보게 되자 다시 한 번 삼성 구단에 감사 의사를 전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본인은 "누구나 그 상황이었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을 낮췄다. *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선수인데다 평상시에는 큰 존재감이 없던 선수였지만 포스트시즌에 되면 존재감을 과시한데다 [[장태수(1957)|장태수]] 이래 삼성 외야진의 소금 같은 존재로 남을 만한 선수였다. * 선수시절 바가지안타를 잘 때려냈다. * 롯데 자이언츠의 [[정훈]]과 외모가 닮았으며 클러칭 능력도 빼다박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