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준영 (문단 편집) == 생애 및 활동 == [[1985년]] [[12월 5일]]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서구(대구광역시)|서구]] [[신당동(대구)|신당동]](現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2004년 [[한빛 스타즈]] 소속으로 데뷔하였고, 2005년에는 프로리그 개인전에 기용되기 시작하였다. 전기리그에서는 7승 4패를 거두며 다승왕을 차지하는 등 주목받는 신인으로 입지를 굳혔으나, 매우 얇았던 한빛의 선수층 때문에 플레이스타일이 조기에 공략되어 후기리그에서는 3승 8패로 매우 부진하였으며 팀도 최악의 슬럼프를 겪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개인리그의 경우 MSL에서는 별 활약을 못하였으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2005년 EVER 스타리그에 첫 진출하여 16강에 그치고, 2005년 So1 스타리그 16강에서 [[홍진호]]와 다른 동족전에 비해 단기간에 승부가 갈리는 저저전임에도 불구하고 저그의 웬만한 유닛이 다 등장하는 등의 장기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맵이 좁은 본진 입구를 지는 반섬맵 [[815(스타크래프트)|815]]였다.] 그리고 탈락이 확정된 마지막 경기에서 최연성을 장기전 끝에 잡아내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 우주방어의 최강자이던 최연성이 도리어 공격만 하다가 김준영의 수비에 막혀 졌다.] 이후 2006년 프로리그에서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6승 5패로 70%가 넘는 승률에 다승 2위를 찍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리그에서만큼은 매번 16강에서 고배를 마셔 16강 [[테란]] [[염보성]]과 같이 16강 저그라 불렸다. 2007년에는 [[프로리그]]에서의 성적은 부진하게 되었으나 대신 개인리그였던 Daum 스타리그 16강에서 [[송병구]], --[[신희승]]--, [[한동욱]]을 잡고 3승으로 조 1위로 16강을 뚫자 무서운 기세로 8강에서 --[[진영수]]--를 2:1, 4강에서는 당시 최연소 결승 진출과 함께 최연소 로열로더를 꿈꾸던 [[이영호]]를 3:2로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해 평소에도 [[알카노이드(스타크래프트)|알카노이드]] 인상적인 명경기가 나타나며[*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nd 24강 F조 6경기. 경기시작 17분만에 미네랄 4만, 가스 17000을 먹은 경기로(경기 후의 자료 화면), 트리플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변형태에게 '''본진+7개의 멀티의 힘'''으로 뮤탈로 골리앗+발키리를 제압한 후 다양하게 미니맵을 채우며 변형태를 안드로메다로 날린 경기.] 등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던 [[변형태]]를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커리어가 뛰어난 두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변형태는 전 시즌에도 3위를 기록했고, 그 이전에도 8강을 여러번 기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승전 멤버로는 이전 커리어가 그다지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김준영은 16강에서 살아남은 적이 이 시즌 이전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분명히 커리어가 영 아니어다.] 당시에는 흥행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이후 '''결승만은 대박난 스타리그'''[* 사실 16강부터 [[박정석]]의 [[부활]], 겁없는 무서운 신예이자 역대 스타리거 중 최초의 중학생인 [[이영호]]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이슈가 많았으며 8강에서 박정석이 떨어졌으나 8강 대진도 화려하다 할 수 있다. 흥행을 걱정하게 만든 건 4강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이거나 흥행을 기대할 수 없는 변형태, 김준영이 당시 물이 올라와 있던 송병구와 [[로열로더]] 후보였던 이영호를 꺾고 올라왔기 때문. 결승만은 대박났다고 하기보단 다른 수많은 리그처럼 결승에서 미끄러질 뻔한 리그라고 보는 게 옳다.][* 예상을 뒤엎는 많은 관객 수와, 한경기 한경기가 명경기이면서, 2:0 상황에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심기일전하여 3경기를 내리따내는 김준영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애를 보며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내린 비로 인해 하늘도 김준영의 우승과 온게임넷을 축복하고 있다고까지 했을 정도]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를 선보였다. 1세트 [[파이썬(스타크래프트)|파이썬]], 2세트 [[몽환(스타크래프트)|몽환]]에서 내리 패하며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 3세트 [[히치하이커(스타크래프트)|히치하이커]], 4세트 [[몬티홀(스타크래프트)|몬티홀]]에서 승리, 그리고 대망의 5세트, [[파이썬(스타크래프트)|파이썬]]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스타리그 결승 최초로 [[리버스 스윕/e스포츠|리버스 스윕]]'''을 이룩함과 동시에 16강 저그라는 타이틀을 버렸다. 당시 종족 트렌드와 반대되는 스타일을 가진 공격적인 테란, 수비적인 저그 2명의 게이머라서 경기는 더욱 재미있었다는 평가다. 이 다음 스타리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을 통틀어 가장 많은 우승자의 역상성 종족전 비율을 자랑한 리그이고, 저그 게이머가 가장 상성이 밀린다는 테란 게이머들하고만 대부분 만나서 우승한 멋진 리그였다.[* 16전 중 15전, '''92%'''가 역상성 종족전. 참고로 이와 비슷한 역상성 종족전 비율을 자랑했던 우승자는 [[당신은 골프왕 MSL]]의 [[박태민]]이다. 박태민은 첫 경기에서 [[저그]]인 [[박성준(1986)|박성준]]을 2:1로 잡은 이후 매치업에서는 테란과의 다전제만 '''한 대회에서 5번을 겪었다.''' 그것도 어중간한 테란이 아니라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 [[서지훈(프로게이머)|서지훈]], [[이윤열]]을... 그나마 당시 전상욱은 [[저막]]이라는 꼬리표가 아직 떨어지기 전이긴 했지만, 나머지 두 명의 테란과는 두 번씩의 다전제를 치렀으며, 이윤열과의 결승전은 스타1 양대리그 유일무이의 '''7전 4선승제 결승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우승자 징크스에라도 빠졌는지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는 1승 2패로 광탈하였고, 그래도 프로리그에서만큼은 선전했으나 프로리그에서도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점 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8년]] 초에는 Daum 스타리그 결승 상대였던 [[변형태]]와 함께 [[PSL#s-1|PSL]]로 함께 떨어졌고, 상반기에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와 [[스타리그]]에서 모두 심하게 부진하면서 Daum 스타리그의 저주가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했지만, 동년 [[10월]]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는 두번째로 16강을 뚫었고, 8강 상대인 최종병기 [[이영호]]에게 1세트 [[메두사(스타크래프트)|메두사]]에서 전맵 멀티를 기반으로 한 소떼 관광을 선보였다. 3세트인 [[플라즈마(스타크래프트)|플라즈마]]에선 김준영의 반섬맵 스타일인 확장중심 운영을 저격했던 이영호의 [[전진 배럭]]에 당해 가스멀티를 파괴당하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저럴]] 올인을 준비했다. 이때 상황을 너무 낙관한 이영호가 생산설비 대신 테크 건물과 업그레이드에 투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와중에 [[저글링(스타크래프트 시리즈)|저글링]]으로 마인 제거를 했다면 오히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역으로 대인답게 러커가 탱킹으로 마인을 제거하고 저글링의 역대박에 벌처 3기가 폭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탱크 3기만 남은 것을 본 김준영은 땡저글링으로 남은 탱크를 파괴하고 생산설비를 장악해 GG를 받아냈다. 4강 진출에 성공하나 로얄로더 후보로 떠오르던 [[정명훈(프로게이머)|정명훈]]의 메카닉에 3:1로 분패하고 말았지만 이후 항간에는 '''16강 뚫은 김준영'''이라는 [[유행어]]가 돌았다. 16강만 뚫으면 기본 4강은 찍는다는 새로운 징크스가 탄생한 것. 그리고 그 무렵에는 프로리그에서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는지 [[아발론 MSL 2009]]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손주흥]]에게 패하면서 [[MSL]] 진출에 실패했고, [[5월 29일]]에는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한동욱]]을 2대0으로 꺾고 올라온 [[한상봉]]을 맞아 16강 진출전을 펼치게 되었다. 하지만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인한 실전 경험 부족, 손목 이상으로 인해 무기력하게 연속으로 2패하고 탈락하며 [[PSL#s-1|PSL]]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프로리그에서도 거의 출전이 없었다. 마지막 프로리그+공식전 출전일은 2009년 [[7월 11일]]로, 이날 [[eSTRO]]의 [[남승현]]을 맞아서 이겼다. 많은 팬들은 다시 한 번 [[대인배]]의 거대한 스케일의 운영을 보고 싶어하였다. [[본인]]도 재활치료를 하며 연습을 간간이 하고 있다고 했으나... 08-09 시즌이 완전히 마쳐진 이후인 2009년 [[8월 20일]], FA 원 소속팀 협상이 끝나는 날 결국 손목 후유증과 군입대 문제로 은퇴 의지를 시사했다. [[http://www.dailyesports.com/news/view.daily?idx=14432|해당 기사]][* 재미있는 것은, 이 은퇴 기사가 나오던 시각 MSL에서는 [[변형태]]의 4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1, 2경기를 이겨놨던 [[변형태]]는 김준영의 은퇴 소식이 나오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3연패하면서 [[한상봉]]에게 [[역스윕]]을 당했다는 것이다.]. 은퇴식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개막전이 있던 2009년 10월 10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개막전 [[웅진 스타즈|웅진]]과 [[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SKT]]의 3세트 시작전에 열렸으며, [[이재균(e스포츠)|이재균]] 감독이 손수 김준영에게 [[양복]]을 입히고 공로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2010년 3월 8일, [[공군교육사령부]]에 입대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뭐? 대인이 [[공군 ACE]]에 들어간다고?"라고 착각했지만 일반병 입대였다. 2012년 1월,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박지호(프로게이머)|박지호]]가 김준영에 대한 썰을 풀었다. 김준영이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번 돈이 고작 5천만 원 수준이었는데, 그걸 주식에 투자하고 군 입대하고 나중에 보니 4배로 뛰었다고 한다. 정작 같이 투자한 자기는 쫄딱 망했다고.[* 하지만 사실 김준영이 프로 생활하면서 5천만 원만 벌어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빛 시절 [[윤용태]]의 연봉이 600만 원일 때도 김준영의 연봉은 2300만 원이었으며(2006 ~ 2007), 팀에 돈이 부족해 [[CJ 엔투스/스타크래프트|CJ Entus]]으로 잠시 이적했을 때도 이적료 약 7천만 원에 연봉 인상도 해줬으며, 웅진에 다시 복귀했을 때도 연봉을 꽤 받았다. 거기에 스타리그 우승 상금(4천만 원)까지 포함하면 이는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다만 이적료는 김준영 개인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팀에게 지급하는 돈이고, 연습생 시절은 연봉이 낮았을 것을 감안하면 대략 상금 등 잡다한 수익 합쳐서 1억 원 전후는 벌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세금 떼고 생활비도 쓰면,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번 돈 중 쓸거 쓰고 뗄거 떼고 저축한 돈이 5천만 원 정도라는 이야기일 듯. 연봉 2천~3천만 원 수준의 직장에 4~5년 다니고 5천만 원 모은 거면 굉장히 알뜰하게 모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