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지훈(가수) (문단 편집) === [[투투(가수)|투투]], 솔로 활동 === > '''첫 방송을 하고''' ([[투투(가수)|남자 멤버]]) '''셋이서 이대 입구로 워커를 사러 갔는데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더니 2주 만에 갑자기 떠버린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5ld2be1RKRU&index=45&list=PLC77C93F64EF0580F|2012년 11월 8일자 tvN E News 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지훈은 1992년에 오지훈, 유현재와 [[명지전문대학]] 동기로 입학[* 김지훈: 실용음악과, 오지훈: 전자계산학과, 유현재: 기계설계학과]했으며 투투 결성 전까지도 셋은 계속 밴드 활동을 이어나갔다.[* 셋은 신촌에서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로 활동했는데 그당시 부른 곡 중에 하나가 Room Tiger로 2000년 7월 2일자 'SBS 러브게임 - 클럽 싱글즈 연예인 특집 제1탄 가수편'에서 김지훈이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했다.] 그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가죽 점퍼를 입고 금속성이 짙은 목소리로 록 밴드(예: 아트)의 보컬로 활동했다고 한다. 모터사이클이 타고 싶어 관련 면허를 따고[* 그러나 1994년에 김지훈과 유현재는 자동차 운전 면허가 없어, 투투 구성원 중에서 유일하게 자동차 운전 면허를 소지한 오지훈이 운전하는 차로 스케줄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투투 1기 시절에는 로드매니저가 없었고, 매니저도 운전 면허가 없어 투투 활동 이전부터 자동차를 소유한 오지훈이 직접 자신의 차에 멤버들을 태우고 다녔다.], 친척이 타던 모터사이클을 중고로 사서 종종 타고 다녔다고 한다. ||<-6> '''{{{#white 투투 1집 활동 영상 모음}}}''' || ||<-3>{{{#!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7NJnzCit9xU)]}}}||<-3>{{{#!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MeeimVsIUk)]}}}|| ||<-3> '''{{{#!html 일과 이분의 일}}} {{{#!html }}} {{{#!html 무한 반복 영상}}}''' ||<-3> '''{{{#cce1f9 KBS2 가요톱10 1994년 11월 5주{{{#!html 그대 눈물까지도}}} {{{#!html }}}}}}''' || ||<-3>{{{#!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1DlQKKW5QbU)]}}}||<-3>{{{#!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p30gFSw19DY)]}}}|| ||<-3> '''{{{#!html 내일은 늦으리 1994}}} {{{#!html }}} {{{#!html 환경보존 슈퍼 콘서트}}}'''[* 투투 참여 부분: 내일은 늦으리 1994, 2부 - 일과 이분의 일, 투투 인터뷰, 용사의 외침, 아름다운 세상으로] ||<-3> '''{{{#cce1f9 1994년 12월 3일 양산동부지역 부산직할시 편입축하 쇼 {{{#!html 내 인생의 러시아워}}} {{{#!html }}}}}}''' || 1994년 5월 1일에 고3시절부터 같이 밴드 활동을 했던 오지훈, 유현재와, 그리고 앨범 작업이 끝난 이후에 객원 멤버로 영입된 [[황혜영(가수)|황혜영]]과 함께 그룹 [[투투(가수)|투투]]의 보컬로 복권 추첨방송인 KBS 2TV《홈런! 일요일》에서 방송 데뷔를 했다.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인기를 얻은 황혜영과 대조적으로, 김지훈은 깔끔한 미성에 시원한 고음과 소울풍의 창법으로 훤칠한 키에 장난끼 있는 무대 매너로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 출처: 4인조 그룹 <투투> 해외시장 "노크", 1994. 7. 20., 김종림 기자, 연예정보신문]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jihoon1.gif|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jihoon2.gif|width=100%]]}}} || ||<-2> {{{-1 {{{#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1주 {{{#!html 일과 이분의 일}}} {{{#!html }}} <우>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5주 {{{#!html 그대 눈물까지도}}} {{{#!html }}}}}}}}} || 1994년 4월에 발매된 투투 1집의 타이틀곡인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 6월 1주에는 KBS2 [[가요톱10]]에서 28위로 첫 진입을 하였고, 6월 4주 18위, 6월 5주에는 8위로 수직 상승하여, 7월 2주에는 4위, 7월 3주에는 2위를 기록했다.[* 가요톱10의 1994년 7월 1주차 방송은 상반기 결산 방송이며, 7월 1주의 순위를 측정하지 않았다.] 일과 이분의 일은 [[SBS]] TV 가요 20에서 5번 1위를 기록하였으며, (1994년 7월 3주, 4주, 8월 1~3주) 가요톱10에서는 1994년 7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5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여 골든컵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일과 이분의 일]]로 투투가 크고 많은 인기를 얻게 되자 쉴 틈 없이 강행군인 스케줄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왔었다. 폐의 기능이 나빠져 산소통을 끼고 다닐 정도였는데, 하루에 3시간 이내로 잘 정도로 꽉 찬 스케줄의 영향도 있지만, '라이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라이브로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선) 최대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투투 활동 초기에는 아직 곡에 대한 감정 표현이 서툴러 남몰래 눈물을 훔칠정도로 음악활동에 진심을 다해 활동했다. 그는 데뷔 초기 부터 '라이브 무대의 콘서트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각종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밝혔고, 유현재에게 기타를 배우는 등 투투 활동 시기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이 보컬을 맡고 오지훈이 기타, 유현재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곡으로 가요톱10에서 1994년 10월 첫 주에 24위로 첫 진입 후 11-20권 내에 머물다가 12월에는 10위권 안에 들면서 1995년 초까지 상위권(최고 순위: 가요톱10 5위)에 머물렀다. ''''그대 눈물까지도''''는 그의 청아한 음색이 잘 드러난 노래라 그를 상징하는 노래로 회자되며, '일과 이분의 일' 때와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투투는 [[KBS]] 가요대상과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現.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서울 가요대상에서 랩댄스 부문 대상을, 골든디스크 본상[* 골든디스크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다.]을 수상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jihoon3.gif|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jihoon4.gif|width=100%]]}}} || ||<-2> {{{-1 {{{#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5년 8월 2주 {{{#!html 바람난 여자}}} {{{#!html }}} <우> KBS2 가요톱10 1995년 12월 1주 {{{#!html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 {{{#!html }}}}}}}}} || 이어 투투 2집 시기인 1995년에는 그룹의 리더[* 투투 2집은 오지훈이 군입대 당일까지(1995년 5월) 프로듀서로 참여한 앨범이지만 가수로서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투투 정규 멤버 중 김지훈만 2집 앨범에 참여했다. 투투 2기는 정규 멤버 김지훈에 객원 멤버 셋이 구성되었기에 김지훈이 그룹의 리더가 되었다.]와 보컬로서 활동하였고, 엠넷의 '고 엠넷 고'로 첫 MC 데뷔를 하게 되었다. 2집 수록곡 중 주된 방송 활동곡은 ''''바람난 여자''''와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이며 2집 노래의 대부분을 김지훈이 불렀다. 나머지 멤버들은 객원 멤버 형식으로 앨범 당 한 곡 또는 두 곡만 참여하였다. ||<-2>{{{#!wiki style="margin: -5px -10px" [navertv(4308864)]}}}|| ||<-2><:>'''{{{#cce1f9 KBS 가요톱10 1995년 10월 1주 1위 후보곡 {{{#!html 바람난 여자}}} {{{#!html }}}}}}''' || 바람난 여자는 가요톱10에서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였다. ||<-2>{{{#!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4JIhj8aynU, start=2419)]}}}|| ||<-2><:>'''{{{#cce1f9 SBS TV가요20 1995년 11월 19일 {{{#!html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 {{{#!html }}}}}}''' || 그는 1996년 1월 5일자 [[MBC]] [[https://youtu.be/OH3J47285KE|인기가요 BEST 50에서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의 무대]][* 투투 2집 활동 말기에 다리를 다쳤던 터라 한 동안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에, 마지막 무대에서는 다리를 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를 끝으로 투투 활동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활동 중에 입대한 터라 그의 입대 후에도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은 한동안 가요톱10에 순위권에 머물렀다. 김지훈은 1990년대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 [[https://www.youtube.com/watch?v=p_gyQl39gCg|일과 이분의 일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1994년에 120만 이상 팔렸다고 한다. 출처: MBC 뉴스투데이, 2020. 8. 24. TV 앨범 '일과 이분의 일' 투투]]] 투투 활동시기에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 당시에 데뷔 전 연습 기간까지 포함해서 약 2년간 약 1,800만 원 정도의 수입만 받았다고 한다.[* 2008년 1월 31일자 KBS2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투투 시절의 수입 문제는 투투의 1집과 2집의 객원 멤버로 활동했던 황혜영도 2011년 ~ 2013년 사이에 출연했던 SBS [[자기야 - 백년손님|자기야]], tvN e-news(2012년 11월 8일에 방영)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투투 1집은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 이윤정이 보컬로 참여한 음반이다. 음반이 완성된 후에 여성 파트의 실연자인 이윤정이 개인사정으로 [[일과 이분의 일]]의 무대에 설 수 없자 황혜영이 일과 이분의 일 무대 활동을 위한 객원 멤버로 들어왔고, 황혜영은 이윤정이 부른 노래에 립싱크를 했다. 그러므로 투투 1집 정규 음반에는 황혜영의 이름이 실리지 않았다. 투투 1집 음반이 약 120만장이 팔렸어도 1994년 여름에 발매된 재판 앨범 겉표지 사진과 가사집 속 사진을 제외하고는, 황혜영에겐 투투 1집(초판, 재판 모두) 음반 수록곡에 대한 (광의의) 저작권이 없다. 황혜영은 일과 이분의 일 리믹스 버전 녹음 이후인 1994년 7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일과 이분의 일로 활동할 때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된 리믹스 음원을 사용할때도 있지만, 투투 시절 대다수의 활동은 이윤정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투투 2집에 수록된 '''일과 이분의 일의 영어 버전, 바람난 여자'''의 여성 파트의 실연자도 이윤정이다. 게다가 연기자 활동 분야에서는 투투로서 계약이 만료(1994년 12월 31일)된 직후인 1995년 1월부터 연기자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타서치'의 소속 배우로 연기자 활동을 해오다가 음악 활동 분야에선 투투의 소속사인 휘트니스와 객원 멤버 계약을 맺은 황혜영의 경우, 김지훈과 수익 정산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혜영이 투투 소속사로부터 받은 금액도 그녀가 일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심지어 오지훈의 경우 투투 1집과 2집의 앨범 수록곡의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오지훈의 자동차로 멤버들을 태우고 이동(출퇴근 포함)하는 등 운전 업무까지 했음에도, 오지훈이 투투 활동 후 정산 받은 금액은 김지훈이 받은 금액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고 코러스를 부른 유현재도 마찬가지로 정산을 제대로 못받았다. 참고로 [[룰라]] 멤버들도 1990년대 중반에 받은 1인당 수입은 투투 멤버들이 받은 1인당 수입과 비슷했다고 한다.][* 투투 활동에 대한 정산이 불공정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듀크 활동할 때는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산을 괜찮게 받은 편이었다. 듀크 멤버였던 김석민은 듀크 활동으로 억대의 수익을 벌었다고 스페이스A의 멤버 [[박재구]]의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y8kx6sUFzAc|응답하라재구가간다에서 이야기했으며]], 듀크 활동 당시 개인 활동을 병행한 김지훈이 김석민보다 많이 벌면 많이 벌었지 적게 벌지는 않았다. 김지훈은 생전에 투투 시절에 돈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오해를 받았기에 투투 시절 일화와 정산 이야기를 방송에서 가끔 해온 것이지 21세기엔 1990년대 중후반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지 않았다. 듀크 활동 후반기부터 김지훈의 매니저를 맡은 김지훈의 사촌 동생은 2013년 12월 인터뷰에서 '형은 젊었을 때부터 연예계 바닥에 있는 힘든 동료들을 정말 많이 도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의 경제적 상황을 추측한 기사들의 내용을 부인했다.] [[투투(가수)|투투]] 데뷔 전에는 남자 세 명이 봉천동 숙소[* 오지훈이 휴대폰을 판 돈으로 1993년 여름에 유현재와 마련한 작업실 겸 숙소로 소속사에서 마련한 청담동 숙소로 이사(1994년 8월)가기 전까지 거주했다. 김지훈은 1994년에 숙소에 합류했다.]에서 돈이 없어 컵라면을 나눠먹으면서 서로를 다독였고, 1기 시절인 1994년, 소속사에서 밥을 제공하지 않을 때에는 수중에 돈이 없어 멤버들이 밥을 굶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활동하던 댄스가수들을 보면 화려해 보이고, 밝고 역동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결국 뒷면에는 힘든 때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1994년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타던 날 남자 멤버 셋(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이 방송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보니 담배값이 없어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중 긴 담배꽁초들만 주워서 피었다는 일화를 그 예로 제시했다.[* [[https://youtu.be/U5JL3bkSrHY|남궁연의 고릴라디오 (2007. 3. 9.)]]] 그는 1996년 1월에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 동기로 개그맨 [[김경식]]이 있다.[* 투투 활동 이전에 방위 판정을 받았으며, 1996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선임들이 김경식에게는 딱따구리 소리를 내라고 하고, 김지훈에게는 반쪽 춤을 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복무 중 군화를 묶으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그대로 허리를 다쳐서 소집해제를 했다. ||<-2>{{{#!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zu32RzO0Rps, start=1849)]}}}|| ||<-2><:>'''{{{#cce1f9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09회(1997년 9월 20일) {{{#!html 익숙해진 슬픔}}} 소개 영상 {{{#!html }}}}}}''' || 제대 후 1997년 하반기에는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락 발라드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했다. 솔로 앨범에서는 프로듀싱에 참여하였고, 자신이 작곡한 '꿈속에서'를 싣기도 했다. 솔로 앨범의 수록 곡들은 투투 시절의 앨범 수록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때는 소속사와의 문제도 있었고 매니저가 돈을 받고 일을 잡지 않아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1997년 9월 20일자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신곡 콜렉션 코너에 잠깐 출연한 것과 역시 동년 가을에 출연한 KBS 2TV 슈퍼 선데이를 포함해, 솔로 앨범을 발매한 1997년부터 듀크로 데뷔한 해인 1999년까지 그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었다. 그는 [[듀크(가수)|듀크]]로 데뷔한 이후의 방송에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힘들었던 시절의 예로 솔로 앨범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던 적이 있었다. 2008년 인터뷰에서는 세상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가 되가면서 (솔로 앨범 활동 시기에 겪었던) 그런 경험이 이제부터는 당하지 않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지훈은 [[https://www.youtube.com/watch?v=Sxm5U2eqW0U|2002년 11월 27일에 방송된 '야! 한밤에'의 '진실 혹은 대담']][* 출연자: [[주영훈]],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싸이]], [[이기찬]], [[황보(가수)|황보]], 김지훈]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의 질문에 대해 솔로 앨범 활동부터 약 2년간의 시기를 꼽으며 그 시기에 대해 '어머니는 미국에 살고 있는 누나의 집으로 가시고 형들도 사업이 안 좋아서 자신을 도와줄 입장도 안 되었고, 아버지도 안 계셨으며 (자신은) 후배들의 작업실에서 살았다.'고 대답했다.[* 김지훈의 아버지는 김지훈이 6살 때 세상을 떠났다.(이 사실을 2009년 5월에 방영된 KBS Drama 채널의 '하하호호 부부유친'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듀크로 활동하면서 번 돈을 모아 2001년 상반기에 집을 산 뒤 미국의 누나 집에서 거주했던 어머니를 모셔왔고, 2007년 4월까지(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는 여러 예능에서 1집만 세 번(투투, 솔로, 듀크) 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었다.] 그 2년 동안 후배에게 피아노도 배우고 그때 써놨던 가사들과 곡들을 듀크 시절에 많이 사용했다고 방송에서 언급하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 바닥까지 갔다 오면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알게 돼요."라고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