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영(1935)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 현역 시절에는 내야수로 뛰며 모교인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고]]를 전국 최강으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가 재학 중이던 시절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고]]는 세 차례 전국대회 정상에 등극했는데, 1950년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최전성기를 맞은 인천고 야구부는 그 뒤 1989년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1979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4번의 준우승만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인천고를 이끈 에이스 투수가 [[최계훈]]이었다.][* [[임호균]]이라고도 하는데, [[임호균]]이 아니라 [[최계훈]]이다. 임호균은 1956년생, 최계훈은 1961년생이다. 1979년 전국체전 결승 추첨패를 포함해 4회의 준우승에 그쳤던 인천고의 에이스는 [[1979년]] 당시 고3이던 최계훈이다.] 그가 인천고 시절에 남긴 위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김진영이 활약할 당시 함께 뛰었던 동문 선수 중 한 명이 훗날 [[농협 야구단]] 감독을 맡게 되는 김영복 전 감독이다. 공교로운 것은 김진영과 김영복의 아들이 나란히 야구를 하게 된다. 후술하다시피 김진영 감독의 아들은 [[김경기|대를 이은 인천야구의 슈퍼스타]]로 성장했고 김영복 감독의 아들은 [[김한수|2017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혹은 암군~~]]이다.] >인천고 전성기때 김진영의 「머큐롬」(옥도정기)사건은 지금도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54년 청룡기 대회 1회전 대 세광고전을 하루 앞두고 종로5가 칠성여관에 인천고가 투숙하고 있었는데 김진영은 먹은 음식이 체해 고통으로 야단 법석이었다. 이때 당황한 주부는 「머큐롬」병을 [[활명수]] 병으로 알고 김진영에게 주었다. 머큐롬을 단숨에 마신 김진영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 >인천고의 명유격수로 차돌이란 평을 듣던 김진영은 약이라곤 먹어 보지를 않아 활명수 맛이 그런줄 알고 그대로 마시고 만 것이다. 이튿날 겨우 회복한 김진영이 경기장으로 달려가보니 경기는 3회에 들어갔는데 인천고가「노·아웃」에 만루의「찬스」를 맞고 있었다. 이때 김은「핀치·히터」로 출전, 극적인 만루「홈런」을 터뜨려 결국 12-0, 5회「콜드·게임」승을 거두는데 수훈을 세우기도 했다. > ---- > 중앙일보, 1980.10.2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그 뒤 전인천(55년), [[실업야구]]팀 [[상무 피닉스 야구단|육군 경리단]] (56~59년), [[국토교통부|교통부]] (60~62년) (. [[한국철도공사|철도청]] (63~64년)에서 뛰었다. 195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내한경기에서 대표로 선발된 이후 1959년 제3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주전 유격수로 준우승의 주역이 된다. 강대중[*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교토상고, 닛폰대학에서 재학하며 일본 고교,대학야구를 경험하였으며 고교시절 고시엔 3차례나 출전을 하였다.] 을 이어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국가대표 유격수를 지냈다. 강대중을 이은 한국 야구 간판 유격수 계보의 두번째이며 해방 후 야구인으로서는 시초로 꼽힌다. 이후 간판 유격수 계보는 [[박정일(야구선수)|박정일]] [* 재일교포, 4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출전] - [[하일(야구선수)|하일]] - [[김재박]] - [[류중일]]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진다. 전해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수비가 좋은 편이었으며 펀치력도 있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종남(기자)|이종남]] 기자가 쓴 책 '인천야구 이야기'에 언급된 바에 의하면, 상당한 근성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의 근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실업야구 선수 시절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는데 중요한 경기에 그가 필요해지자 병원 직원들 몰래 환자복을 입은 채(!!!) 병원을 나와서 [[동대문야구장]]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친 뒤 다시 유유히 환자복을 입고 병원으로 돌아왔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