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영(군인) (문단 편집) === 12.12 군사반란 가담 === 1979년 [[대령]] 시절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으로 청와대 근위 부대인 33경비단의 단장이 되었는데 33경비단은 30경비단과 함께 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의 전신으로 [[대통령]]의 친위대와 같았다. 30단장과 33단장은 대통령의 총애와 신뢰를 받는 보직으로 앞으로 미래가 보장된 군사 정권의 꽃보직 중 하나였다.[* [[손영길]], 전두환, [[이종구(군인)|이종구]], [[고명승]], 장세동, 김진영을 비롯한 실세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이 보직을 독점했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에서도 당연히 후임들이 이 자리를 독점했다.]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수도경비사령부의 주요 실병력으로서 반란군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쓸 부대였으나 30단장 장세동과 33단장 김진영은 하나회 두목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에 뛰어들었다. || [[파일:attachment/10120703115115.jpg]] || ||▲ [[10.26 사건]] 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된 [[장태완]] [[소장(계급)|소장]](오른쪽 [[찻잔]] 든 이)이 부임 나흘만인 79년 [[11월 20일]] [[청와대]]를 지키는 근위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 제33경비단을 초도순시, 단장인 김진영 [[대령]]으로부터 부대현황을 브리핑받고 있다. [br]그리고 이 사진이 촬영되고 3주 후, [[12.12 군사반란|브리핑을 하던 대령은 브리핑을 받던 지휘관을 배신한다.]]|| 30단장 장세동과 더불어 반란군 지휘소가 차려진 [[경복궁]][* 청와대의 최근접 경비를 맡았던 30경비단의 본부가 경복궁 내 북단에 있었다.]을 지켰다. 반란 진압에 나선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계급)|소장]]은 자신의 직속 부하인 장세동과 김진영이 직속 상관과 [[국가]]를 배신한 것을 알고 격노했다. 진압군 총지휘관 [[윤성민]] 참모차장 등 다른 장성들이 진압 과정에서 우유부단한 면모[* 병력을 동원해 유혈 사태를 일으키지 않기로 반란군 세력과 신사 협정을 맺고 그걸 믿어서 출동시킨 9공수여단을 회군시켰다. 물론 반란군은 신사 협정 따위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병력을 동원해 승기를 굳혔다.]를 보이는 가운데 장태완만은 보안사의 뒷공작[* [[도청(범죄)|도청]]을 통해 수도경비사령부가 유사시 동원 가능한 [[서울특별시|서울]] 인근 사단들을 출동시키지 못하게 했다. 30사단장 박희모는 회유에 넘어가 반란군에 대놓고 길을 열어주며 협조했고(갑종장교 출신인 박희모는 이후 끝까지 살아남아 1985년에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중장)까지 오르고 예편했다.) 26사단장 배정도(배정도는 12.12 사건 당시의 행보 때문에 살아남았으나 더 이상 진급하지는 못 하고 국방대학원 학장을 끝으로 1983년에 소장 예편하였다.)는 저녁 회식에서 보안부대장의 술 공작에 넘어가 자고 있었고 수기사단장 손길남은 침묵했으며 20사단장 박준병은 반란군에 가담 중이었다.]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반란 진압에 애썼다. 장태완은 수도경비사령부 주요 실병력 중 30경비단은 반란군의 베이스였기 때문에 동원할 수 없었기에 김진영이 부재 중인 33경비단의 [[전차]] 부대를 끌어와 경복궁으로 진군하려 했다. 전차 소리를 듣게 된 반란군은 위기 상황에 빠졌으나 부대장인 김진영이 직접 나서 33경비단 소속 전차 부대를 제지하고 회군시켜 진압군을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자신에 대한 사살 명령이 내려진 와중에 직접 뛰쳐 나갔다. 말 그대로 [[역적]] 행위이지만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다소 비장하게 묘사된다. 김진영이 부하에 대한 인망이 진짜로 높았는지 죽음을 무릅쓰고 전차를 막고도 무사히 회군에 성공시켰다.] 반란군이 동원한 부대는 차곡차곡 서울에 진주하여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대한민국 육군본부]], 특전사령부, 중앙청 등을 점령하는 가운데 진압군은 어떠한 부대도 동원하지 못해 결국 반란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때 김진영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래의 육군참모총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대한민국을 장악한 하나회의 주축 멤버, 최고 권력자 전두환의 직계 충복, 군사 반란의 공신, 생도 시절부터 인정받아온 자질 등 김진영의 화려한 미래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나회 동기들이자 반란의 1등 공신들인 허화평, 허삼수가 정계로 진출하고 1기수 [[선배]]인 장세동도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경호실장]]이 되어 군을 떠나게 됨으로써 군 내에 김진영의 경쟁자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나 육군참모총장으로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