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영(군인) (문단 편집) === 문민정부 출범 이후 경질 === 1992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비록 하나회의 [[정적]]이었던 김영삼이지만 [[3당 합당]]에 따라 같은 여당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정권 교체였고 정권 [[안보]]와 직결된 모든 요직을 독점해 군을 하나회가 확고하게 장악한 상황에서 하나회를 건들 경우 쿠데타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김영삼이 하나회를 곧바로 숙청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김진영은 김영삼과 같은 [[거제도]] 출신이라 더욱 그러했다.[* 민정계면서도 신민주계에 속하는 [[김기춘]] 또한 김진영과 같은 거제도 출신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취임 12일째인 1993년 3월 8일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임기 극초반인데다 아직 상반기 정기 군 인사 시기[* 과거에는 6월과 12월에 정기 군 인사를 실시했다. 이 때 이후로 4월과 10월로 바뀌었다.]도 3개월이 남아 아무도 예측못한 시점에서 사전에 의논도 없이 국방부장관 [[권영해]]와 조찬 자리에서 육군참모총장 김진영과 기무사령관 서완수를 경질할 것을 지시했다. [[역사]]에 남을 하나회 대숙청 작업의 시작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김영삼은 하나회 출신 군인들을 싸그리 밀어버렸다. 권영해는 즉각 경질 절차에 들어갔고 오전 동안 자신의 운명은 꿈에도 모른 채 육군본부에서 참모들과 주간 업무 회의를 하며 지시를 내린 후 총장실로 돌아온 김진영은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숙청탄을 맞게 되었다. 김진영은 해임 조치를 반발없이 받아들였으며 2번이나 숙청당한 경험이 있어서 강철 [[멘탈]]로 거듭났는지 육군참모총장 해임 소식을 듣고도 전역식에서 덤덤하게 2분도 걸리지 않는 짤막한 전역사를 깔끔하게 남긴 뒤 군을 떠났다.[* 그에 비해 하나회 선배 [[박희도]]는 노태우에게 숙청당해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당했을 때 전역식에서 부들부들 분노에 떨면서 불만이 가득 섞인 전역사를 남긴 바 있다.] 그렇게 그는 하나회 대숙청의 첫 타자가 된 육군참모총장으로 역사에 남았다.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자타가 공인한 대표화랑 출신이었지만 악성 사조직인 하나회의 손을 잡았기에 결국 정치군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하기에 정치적으로 3번이나 숙청을 겪어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군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후임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동기이자 비하나회 출신인 연합사 부사령관 [[김동진(군인)|김동진]]이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박관용]]과 부산중학교 동기 동창이었는데, 김영삼은 혹여 보안이 새나갈까 박관용에게도 숨겼다고 한다. 김진영이 해임당한 후 며칠 뒤 위로차 만난 박관용에게 김진영이 "해임 며칠 전에도 나에게 무한한 신임을 보였는데 닷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라고 묻자 박관용은 "군인인 네가 정치인의 뜻을 어떻게 알겠냐"라고 말했다고 알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