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태(1952) (문단 편집) == 생애 == 대학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기수|사법연수원]]은 14기로 수료 후 [[검사(법조인)|검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보다 기수가 많이 낮다.] 대학 시절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다.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의 주임검사이기도 했다. 주로 특수부에서 활동한 검사로, 해당 기수에는 검사장 승진을 빨리한 축에 속한다.[* 한 기수 위인 공안통 [[황교안]]보다도 승진이 빨랐다.] 이후 여러 보직들을 맡았고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에는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이뤼진 인사에 따라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이동하여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지냈다. 그러나 동기인 [[채동욱]]이 검찰총장에 오르자[* 12년 12월 인사는 검찰총장 후보군인 두 고검장이 자리를 맞바꾼 인사였다.] 2013년 4월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끝으로 퇴직하여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가 검찰총장이 되었는데, 검찰총장 퇴직 후에는 한동안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개업을 하여 법무법인 인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했으며, 2019년 2월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변호사로 변호사 활동을 재시작했다. 검찰총장 시절 많은 특수수사가 시행되었지만, 항상 전국 [[반부패수사부|특수부]]장 간담회에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