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해 (문단 편집) == 생애 == [[1941년]] [[11월 2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양양면]] 청곡리에서 부농이던 김필구의 2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젊은 시절에 가난에 시달리다 만주로 가서 장사해서 돈을 벌어다가 귀국 후, 양양으로 내려가 땅을 사서 이 곳에 정착해 온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양양초/중/고등학교를 두루 다니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예회마다 노래와 연극을 전부 도맡아 했고, 고향이 휴전선 인근에 있어서 일선 장병 위문을 다니고 고교 시절에는 트럼펫을 불면서 예능 쪽에서 소질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스포츠에서도 소질이 있어서 유도 및 배구선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다니며 극단 '실험극장'에서 주최한 셰익스피어 축제에서 <리어왕>에 나오는 등 연극 활동을 많이 했고, 극단 '신형무대'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62년 제1회 전국대학TV드라마경연대회에서 한양대 대표로 나가 <광산골 이야기>란 작품에서 열연한 끝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해 자동적으로 탤런트가 됐다. [[1964년]], [[KBS]] [[공채]] 4기 탤런트로 데뷔하여[* 다만 1982년 제40호 기사에선 특채되었다고 나와 있다.] 일요연속극 <모란이 지는 날>로 데뷔한 후, 초기에는 이남섭 작가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고, 영화에서는 김응천 감독 작품에 많이 나오며 개성이 강하고 파워풀한 연기를 주로 선보였다. 그러나 지병이던 [[당뇨병]]이 점차 나빠져 2001년, [[태조 왕건]]을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2002년]]에 고향으로 [[귀향]]하였다. 이후 증세가 점차 심해져 [[동맥경화]]까지 앓게 되었고, 게다가 혈액순환 장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2005년]] 3월에는 양양 고향집마저 산불 사고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한동안 낙산요양원에서 생활해오다 5월 20일, 병세 악화로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6월 26일]] 새벽 1시 10분에 당뇨 합병증으로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