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창희(야구) (문단 편집) == 여담 == * 네이버 검색에서 동명의 전 [[김창희(1989)|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게 밀릴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눈에 띄지 않는 야구 선수였지만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4190|이 사진 하나]]로 [[HIT 갤러리|힛갤]]에 올라간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초창기 [[국내야구 갤러리|야갤]]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원래 별명은 창희언니였지만 롤링창희 짤방의 힛갤입성 후, 롤링창희가 대세가 됐으며 그 후 아웃카운트를 착각하고 3루에서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오다 다시 돌아가는 사건 이후 퇴근창희라는 별명이 새로 추가되었다. * 해태에서 데뷔하자마자 [[이순철|거성]]을 외야에서 몰아내고[* [[이순철|그 거성]]은 1997년 시즌 직후 사실상 스스로 해태 타이거즈를 떠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데 그 계기가 된 요인 중 하나가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찬 김창희의 선전 때문이다. 다른 요인은 [[해태 타이거즈 하와이 항명사건|이것]].]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반지를 차지하는 등 타이거즈에서 뛰던 시절 짧고 굵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데뷔 초부터 주전 요원으로 중용된 점을 들어 호남 출신인줄 아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나[* 당시 리그 환경은 연고지 출신 선수를 우대하는 순혈주의가 파다했던 시절이었고 그 중에서 해태는 더더욱 심했다. 선수단 집합을 걸면 비호남권 출신 선수들은 배척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 경남 마산시 출신이다. *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해태의 마지막 홈런을 쳐낸 선수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2001년 7월 29일 경기의 對 삼성 전에서 해태가 삼성에게 8대 6으로 패했는데, 당시 8:5에서 마지막에 한 점을 추격하는 솔로 홈런을 쳤었다. * 해태 시절에는 [[삼나쌩]] 멤버의 일원으로 [[대구구장]]에서 유독 홈런을 자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가 삼성에서 뛰게 된 걸 보면 아이러니. * 선수 생활 동안 두 차례의 트레이드를 겪었는데, 본의아니게 트레이드될 당시 맞상대 선수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김창희가 트레이드될 당시 맞상대는 각각 [[진필중]], [[강동우]]로, 두산 시절까지만 해도 특급 마무리였던 진필중은 KIA로 가자마자 하락세의 조짐을 보이더니 FA가 되어 LG와 계약한 이후부터는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히 몰락하며 먹튀 테크를 탔다. 강동우 역시 두산과 KIA를 거쳤으나 하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 위기까지 갔다가, 그나마 후에 한화 유니폼을 입고 부활했다. *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었던 [[김응용]] 감독이 해태 시절부터 아껴왔던 선수이기도 하였으며 삼성에서 그를 데려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 지금은 고인이 된 한양대 후배인 투수 [[김건덕]]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규율이 빡센 한양대 야구부 선배들 중에서 유일하게 후배들을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 * 아들인 [[김재민(2005)|김재민]]이 2024 신인드래프트에서 NC에 지명되며 부자 야구선수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