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철용 (문단 편집) == 감독 스타일 == 호남정유 선수들의 낮은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정확한 리시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패턴 플레이와 견고한 수비벽을 만들었다. 선수들의 신장이 낮았기 때문에 큰 공격보다는 창의적인 공격들이 필요했는데, 이 부분에서 [[이도희]]의 존재감이 상당했고 [[장윤희(배구)|장윤희]], [[정선혜(배구)|정선혜]], 박수정 등의 뛰어난 리시브와 디그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호남정유는 블로킹을 따돌리기 위해 한 박자 빠른 C퀵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장윤희(배구)|장윤희]]는 C퀵이 왔을때 대각으로 정확하게 때려냈다. 1997년 선경과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르고 다양한 공격력도 있었지만 상대팀을 질리게 만드는 수비력이 받쳐줬기 가능한 일이었다. 김철용 감독의 이런 지도력은 대표팀에서도 이어졌으며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 냈다. 김철용 감독의 대표팀은 정확한 리시브를 바탕으로 신체조건이 좋은 유럽이나 남미팀들의 높은 벽을 따돌리기 위해 C퀵이나 속공, 이동공격 등 빠른 공격들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상대팀의 공격을 기절할 만큼 끈질긴 수비로 버텨내었다. 김철용 감독의 지도력은 아시아 배구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다만 그게 공격에서도 확실하지 않으면 강공을 포기하고 다시 디그해 세팅하는 극한의 수비배구라 노잼은 물론이고 경기시간 늘어지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사이드아웃제 시절에는 1경기 3대 0경기도 2시간을 찍고, 5세트라도 가면 3시간을 찍는 수면배구화로 인해 TV중계 외면의 주범으로 찍히기도 했다. 장윤희와 (국대한정)김남순이 없었다거나, 컨디션이 안좋아서 손이 안감기면 호남정유 경기는 강타 한번 제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고 지리한 배구를 하게 된다. 2000년대에 [[황현주(배구)|황현주]] 감독이 있었다면 2010년대에는 [[이정철]] 감독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 여자배구에는 김철용 감독이 있었다.[* [[황현주(배구)|황현주]], [[이정철]] 감독은 1990년대 코치로서 김철용 감독을 보좌했다. [[이정철]] 감독이 1994년부터, [[황현주(배구)|황현주]] 감독이 1995년부터였다.] 김철용 감독은 감독으로서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그 과정 또한 아시아 배구의 진보를 이끌어 냈기에 지금까지도 여자배구의 명장으로서 계속해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올림픽 메달까지 이끌어냈으면 더욱 더 빛이 나는 명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