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태룡(1968)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92 신인지명 때 7라운드에 지명될 정도로 무명선수였다. 참고로 삼성이 8라운드부터 패스했기 때문에 막차 지명 선수였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 백업선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이후 [[동봉철]]과 묶여서 1996년 해태로 트레이드되어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타격은 상당히 안좋았으나, 매우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내야를 전천후로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수비]]로 자주 출장했다. 2001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주전 3루수로서, [[정성훈]]의 부상으로 인해 [[이종범]]이 한국에 복귀할 때까지 주전 3루수로 뛰었는데 수비는 그럭저럭 준수했지만 타격이 워낙에 떨어져서 팬들이 맘을 졸이면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3루수로는 신인시절의 [[김태균(1971)|김태균]], [[김동주(타자)|김동주]], [[톰 퀸란]], [[김한수]] 등 거포 또는 타격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기에. 4월에는 타격성적이 너무 좋아서, 당시 일산스포츠나 스포츠서울에 항상 10위 안에 들었다. 김태룡의 타격 추이를 보기 위해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 방망이는 물인데 꾸준히 10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할 정도로 안정된 수비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나름 홈런도 심심찮게 쳐낼 정도로 펀치력이 있었다.[* 2002년에는 잠실구장 좌측 중단 정도까지 가는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 비거리가 120m 수준.] 최근 KIA 팬이 이해하기 쉬운 선수로 비교해보자면 [[박기남]] 정도가 되겠다. 이 선수가 컨택능력만 좀 받쳐줬다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