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해국제공항 (문단 편집) == 연혁 ==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제국비행협회의 시오덴 노부타카(四王天 延孝)에 의해 비행장으로서 최적의 입지로 선정되었으며[* 김해국제공항의 북쪽에는 산이 있지만 일본 방향, 즉 동남쪽으로는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노부타카가 최적의 입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후 1944년 오무라해군항공대 제주도분견대에 의해 비행장이 조성되기 시작, 1945년 2월 11일 부산해군항공대란 이름으로 훈련 기지로서 개장했다. 당시 운영된 기체는 93식 중간연습기(K5Y, 통칭 '톰보'(고추잠자리) 연합국 코드명 Willow.)였다고 한다. 이후 [[가미카제]] 훈련대 비행장[* 실제로 K5Y는 전쟁 말기에 카미카제 용도로 쓰인 기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부대 개설 당시 지휘관은 예비역 출신인 하야시 스에키(林季樹)로 하야시 켄타로(林健太郎,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C%95%BC%EC%8B%9C_%EA%B2%90%ED%83%80%EB%A1%9C|링크 참고]])의 아버지. 5월 11일에 현역인 타카하시(高橋俊策) 대좌로 지휘관이 바뀌었는데 아마 이때 가미카제 기지로 전환됐다.]으로 쓰이다가 [[8.15 광복]] 후 [[미군]]과 대한민국 공군에 의해 군용 비행장으로 운영됐다.[[https://m.blog.naver.com/minjune98/221147877593|#]] [youtube(hhGlb_BJZMw)] 민간공항 시설은 [[1976년]] 지금의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지에 있었던 [[수영비행장]]을 폐쇄하고 지금의 [[대저도]]로 이전해 왔는데 그때는 이곳이 '''김해군 대저읍'''이었기 때문에 김해공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공항이 개항하고 2년 후인 1978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어 신설되는 북구에 소속되었으며 1989년 북구에서 강서구가 분리되면서 강서구 관할로 바뀌었다. 이 문제로 수영비행장 시절처럼 부산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꿔 보려는 시도도 몇 번 있었지만 강서구가 아주 오랜 시간동안 김해 땅이었고 부산과 김해가 동일 생활권인 까닭에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공항에 있는 [[제5공중기동비행단]]에서 복무하는 공군 장병들은 타인에게 복무지를 소개할 때 김해에서 복무한다고 하지, 부산에서 복무한다고 하지 않는다. 보통 공군 장병이 부산에서 복무한다고 하면 [[공군미사일방어사령부|해운대 방공포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산이 외면받는 것도 아닌 게 착륙 시 기내 안내방송에서 "우리 비행기는 김해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의 도시 부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하거나 아예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공항의 영문명은 Busan(Gimhae)로 외국에 알려져 있다. 행선지 안내도 보통 Busan만 뜬다. 여러모로 [[김포국제공항]]과 유사한 점이 많다. 건설 당시와 현재 영유하고 있는 지역의 불일치[* 김포공항과 김해공항 둘 다 건설 당시에는 그 이름에 맞는 지자체 소유의 땅이었으나 나중에 인접 대도시들에 편입됐다.], 소재지 지자체 명이 동일한 '강서구', 소재지를 우선시하는 영문명, 기내방송에서 소재지를 언급하는 점 등이 일치한다.[* 김포국제공항도 영문명은 Seoul(Gimpo)로 표시하며 비행기 도착 시 기내방송에서 "우리 비행기는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또는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