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형오 (문단 편집) == 생애 및 정치 경력 == 1947년 [[경상남도]] [[고성군(경상남도)|고성군]] 고성읍 수남리[[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437&sc_sub_section_code=S2N3|#]]에서 태어났다. 고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수학여행도 못 갈 정도로 몸이 약했으며 중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산에 오면서 난생 처음 기차, 전차를 비롯한 도시 문물을 접했다. 얼마 후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를 오셔 가족 전체가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영도로 이사한 이후 평생 사셨다고 한다. 국회의원 출마 할 때 영도를 지역구로 택한 이유도 이 때문.] 영도에는 고등학교 때 이사를 갔다. 이후 [[경남고등학교]][* 20회 졸업생이며 [[양승태]] 前 [[대법원장]]과 동기다.]를 거쳐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서울대학교 태권도부]] 출신이다.]를 졸업하였다. 이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강영훈]]의 권유로 외교안보연구원으로 이직했다.[* 유신정권 시대 언론이 위축된 상황이라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등의 관료를 역임하였다.[* 이 때 [[정무수석비서관]]이 [[최창윤]]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 [[김정길(1945)|김정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이었으나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45418.html|160525 한겨레 기사]]에 의하면 20대 총선 얼마 전이었던 [[2016년]] 3월에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부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형오1.jpg|width=100%]]}}} || 국회의장 퇴임 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1453년)]]을 다룬 소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79501|술탄과 황제]]를 집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흐메트 2세]]와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심리 묘사와 현대에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현지를 답사하는 본인의 심정이 교차하는 형식으로 저술되었다. 또한 친정인 [[자유한국당]]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서 대참패 이후, 기사 인터뷰나 의원 연찬회에서 한국당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비판했다. 21대 총선 자유한국당(이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총선용 임시 TF의 장을 맡은 것이긴 하지만, [[2016년]]에 당을 떠난 후 거의 4년 만에 친정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2020년 3월 8일 기준, [[미래통합당]] 공천이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공천된 후보자들을 보면 [[친박]]이 많이 줄어들었고 옛 [[바른미래당]] 및 [[새로운보수당]] 출신([[친유]] 및 [[친안]])이 약진했다고 한다. [[바른정당|탈당]] 및 [[바른정당 탈당 사태|복당]] 경력은 공천에서 걸림돌이 거의 되지 않았다. 또 친박과 비박이 혼재한 [[친황]]계도 상당수가 공천을 받았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200306_0000946088|#]] 하지만 공천을 둔 논란이 커지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32444.html|사퇴를 선언]]했다. 결국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참패했고, 공천 관련 잡음과 불협화음이 선거 참패 이유 중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