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호령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5&aid=0000000059&redirect=true|[KIA 칼럼] 1번이 된 '102번' 김호령의 반전]] [[파일:external/www.kmrnews.com/Fnp3-2041275641285.jpg]]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4학년 때 '방망이 한번 휘둘러 볼래?'라는 코치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안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야구를 위해 부천고에서 2학년때 군산상고로 전학을 갔다. 인터뷰에 따르면 부천고 재학 당시 야구부의 인원 수가 모자라서 전학을 갔다고 한다. 같은 팀 입단 동기[* 그렇지만 김호령은 대졸인지라 4년이라는 나이 차가 존재한다.]인 [[황대인]]이 군산 출신이지만 야구를 위해 서울로 전학간 것과는 정 반대. 고등학교 3학년 때 201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외야수로 선발되었다. [[http://www.kmrnews.com/ynews/ifr_view.php?code=NS05&pid=16138&PHPSESSID=69066de6b6d97a944439be47483bff19| 당시인터뷰 기사]] 대회 성적은 27타수 8안타 타율 .296 출루율 .345. 졸업 후에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하고 동국대로 진학했고, 이후 [[KIA 타이거즈]]가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0라운드로 지명하였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03명을 뽑았는데, 김호령 다음 차례로 지명받은 [[한화 이글스]]의 [[박윤철]][* 여담으로 [[박윤철]]은 지명을 포기하고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학교]]로 진학했으나, 대졸을 앞두었던 [[KBO 리그/2019년/신인드래프트|2019년 신인드래프트]]에서도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게 되어 입단하게 되었다.]이 지명을 포기하고 대학교에 갔기 때문에 사실상 '''드래프트 꼴찌'''로 입단이다. '''10라운드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당초 큰 기대를 하고 뽑았다기보다는 키워서 운용할 외야 자원으로 데려왔다. 실제로 동국대 재학 시절에도 2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공격에서는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동국대 감독이던 [[이건열]]의 추천을 받으면서 막차를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건실한 수비와 빠른 스피드를 보여주면서 2014 시즌 후 마무리캠프에 데려가는 등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이 큰 기대를 하였으나, [[야구대제전]] 출전 도중 손바닥 부상을 당하면서 [[스프링 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다. 당시 부상 소식을 들은 김기태 감독이 실망해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 일화가 있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