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홍도 (문단 편집) === [[도슈사이 샤라쿠]]? === 그의 일생에 대해 알려진 부분보단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탓에 여러가지 이야기나 [[루머]]들이 돌곤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김홍도가 바로 1794년 5월 [[일본]]에 갑자기 나타나서 10개월 동안 200여 점의 그림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천재 [[우키요에]]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였다는 이영희 작가[* 언론에서는 이영희를 한일 고대 사학자 혹은 한일 사학자 등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영희는 [[사학과]] 출신이 아니라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 [[작가]] 겸 [[기자]]다.]의 주장이다. 이영희 작가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김홍도가 일본 [[쓰시마 섬]]에 지도를 그리러 간 시기와 샤라쿠가 나타난 시기가 겹치고, 화풍에 있어서 필체나 여타 등이 유사하며 김홍도나 샤라쿠가 발가락이 6개였으며, 때문에 그들이 그린 그림 중 발가락이 6개인 그림이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김홍도가 일본 쓰시마 섬에 지도를 그리러 갔다는 시기는 '''1789년'''이고, 샤라쿠는 '''1794년 5월'''에 나타나 '''10개월'''간 활동한 화가다. 시기가 안 맞는다. 지도가 그렇게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므로, 몇년 동안 쓰시마에서 지도 제작을 병행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김홍도는 '''1791년 12월 22일'''부터 '''1795년 1월 7일'''까지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있었던 '''연풍현 현감'''으로 재직했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정조 실록>에는 '''1795년 1월 7일''' 호서 위유사 홍대협이 연풍 현감 김홍도가 고을을 잘 다스리지 못했으니 죄를 줘야 된다고 청하는 기록이 나온다. 샤라쿠의 활동 시기에 김홍도가 조선에 있었다는 '''국가 공식 기록'''이 남은 셈이다.[* 조선왕조실록 뿐 아니라 [[일성록]]에도 김홍도가 연풍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파직당하고 의금부로 압송될 뻔하다가 사면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덧붙여서 [[일본]]에서 진짜 샤라쿠라는 주장이 있는 사람은 '''수십명'''에 이른다.[* 심지어 샤라쿠의 정체는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설까지 있다.] 다만, 일본에서 샤라쿠의 정체에 대한 주장을 정리할 때는 김홍도도 그중 한 명으로 인정하는 모양인데, 이는 '김홍도 = 샤라쿠 설'의 주장자인 이영희 작가가 관련 내용을 일본에서 책으로 출판[* 책 제목은 '또 하나의 샤라쿠'.]한 영향이 크다. 덧붙여서 [[에도 시대]]에는 [[기리시탄]] 탄압을 목적으로 시행된 이웃과 외지인에 대한 감시 정책이 존재했었다.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이 바람처럼 나타나 여러가지 일을 벌이고 바람처럼 사라지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