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희조 (문단 편집) == 음악적 특징 == 보통 작곡을 음악대학이나 음악원에서 전공하고 일선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달리 주로 연주 분야에서, 그것도 대부분 독학이나 개인 교습으로 배우고 시작한 인물이라 '음악은 듣기 쉬워야 한다' 는 철칙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김희조가 본좌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서양음악을 배우며 커리어를 시작한 음악인이 당시로서는 드물게 한국의 전통음악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창작에 응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향은 작곡 스승이었던 김순남에게 이어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김순남도 월북 전 함화진을 비롯한 국악인들에게 국악 이론을 배우거나 민요 등을 채보하면서 창작에 응용하는 등 민족적인 요소를 상당히 중시했다. 다만 거기서 더 나아가 전위적인 경향까지 보였던 스승에 비해, 김희조는 오히려 음악이 어려우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고 판단해 통속성을 더 중시하면서 국악과 양악의 요소를 긴밀히 접목시키는데 집중했다. 한국전쟁 직후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양악계와 국악계는 서로 선을 그어놓듯이 나뉘어져 있었고, 적대하는 관계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소 닭 보듯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희조의 경우 군악대장 시절부터 [[일제강점기]] 시절 명창이나 명인들이 녹음한 판소리나 [[시나위]] 등을 비롯한 전통음악 [[SP(음반)|SP]]를 모으고 국악인들을 군악대에 편입시키는 등 상당히 적극적으로 국악계와 소통했고, 이렇게 형성된 경험이 이후 국악관현악의 태동기와 발전기에 쏟아낸 작품들에 녹아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뮤지컬의 한국 유입 과정에서도 외국의 명작을 그대로 공연하는 것이 아닌, 한국적인 소재를 통한 독자적인 뮤지컬 창작 노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특히 '대춘향전' 이나 '시집가는 날' 은 김희조 사후에도 계속 반복 상연되고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합창단에서도 김희조의 민요 편곡 합창은 지금도 정평있는 레퍼토리로 계속 애창되고 있고, 군악대의 연주 곡목에도 지금까지 김희조 작곡의 군가나 행진곡, 편곡 작품이 들어있는 등 다방면에서 이 사람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음악에 문외한이거나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학창 시절 '''[[국민체조]]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했거나 '잘 살아보세' 의 가락을 흥얼거리는 등 알게 모르게 이 분의 음악과 자주 마주칠 수 있다. 비록 통속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여러 실험적인 시도에는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있고, [[5.16]] 이후의 군사 정권이 주도한 문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는 이유로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국악계 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은 김희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조국의 찬가' 와 '민족의 노래' 같은 건전가요는 [[차지철]]이 작사를 맡은 바람에 공인된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차지철이 진짜 작사를 한 건지 아니면 할 능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예그린악단에 들어가 뮤지컬에 전념하기 전에는 [[오페라]] 지휘자로서도 소소하지만 한국 오페라 역사에 업적을 남겼는데, [[주세페 베르디|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와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플로토]]의 '마르타' 한국 초연을 지휘한 인물도 김희조였다.[* 일 트로바토레는 1960년 5월에 고려오페라단에서, 마르타는 1961년 12월에 푸리마오페라단에서 한국 초연했다. 두 공연 모두 관현악단은 김희조가 당시 이끌고 있던 KBS 스몰 오케스트라가 참가했다.] 이후에도 7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 정기적으로 지휘대에 올라 자작곡들을 지휘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발자취를 남겼음에도 음악 전공자 외의 일반인들에게는 정작 존재감이 덜한 편인데, 세기가 넘어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동명이인 여성 아나운서 때문에 더 [[공기]]화 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구글링을 해보면 이 분보다 아나운서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후새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