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꾸밈비 (문단 편집) == 전통 혼례의 예식인가? == 일각에서는 꾸밈비가 전통이라거나, 혹은 꾸밈비의 역할을 하는 다른 무엇이 과거에도 양반들의 문화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축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혼례라는 것이 무슨 법제화처럼 딱 정해놓은 것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 가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있었을 만약의 가능성마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사료적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한 그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없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수준에 불과하다. 일단, 전통혼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예기(禮記) 혼의(婚儀)에 나오는 육례(六禮), 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징(納徵)·청기(請期)·친영(親迎)의 6단계이다. ||<#EEEEEE>납채(納彩:혼례 예단)[BR]문명(問名:신랑이 신부 측에 사람을 보내 신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는 것)[BR]납길(納吉: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게 혼례 날짜를 알리는 것)[BR]납징(納徵: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갖가지 선물)[BR]청기(請期:신랑이 신부 측에 혼례 날짜를 알리고 허락을 받는 일)[BR]친영(親迎: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혼례를 거행하는 일)|| 이외에는 문헌통고(文獻通考) 개원례황제납후의(開元禮皇帝納后儀)에서 임헌명사(臨軒命使)·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징(納徵)·고기(告期)·명사 봉영(命使奉迎)의 단계가, 두씨통전(杜氏通典)에는 납채 대신에 납후(納后)로 대체된 형태의 혼례방식이 나타난다. 조선 중대까지 내려가면 혼례는 더 간단해져서 대명회전(大明會典) 친왕혼례(親王婚禮)를 보면, 납채·문명·납길에 관한 의절은 전부 빠지고 오직 납징 예의(納徵禮儀)만을 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납채 이하 문명·납길 세 가지 예는 한 번에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를 정친(定親)이라고 한다.[* 定親의 정확한 의미는 추정에 불과.] 이리저리 어려운 용어가 많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납징 단계에서 꾸밈비의 기능을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가능성만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며, 설령 존재했다고 한들 이것이 현대 꾸밈비의 직접적인 선조라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