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당전쟁 (문단 편집) === [[성동격서]] : 구 백제 지역 공격 === 670년 3월, 설오유 부대를 요동으로 진출시킨 후에, 신라군의 주력은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던 옛 백제 땅으로 대규모 진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문무왕은 본격적인 진격에 앞서 다시 한 번 당나라가 신라의 행동을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외교기만책을 시도한다. >가을(670) 7월, 임금은 백제의 잔당이 배반할까 염려하여 대아찬 유돈(儒敦)을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에 보내 화친을 청하였으나 도독부는 이에 따르지 않고,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보내 우리를 엿보게 하였다. 임금은 그들이 우리를 도모하려는 것을 알고 사마 예군을 붙잡아 두어 돌려보내지 않고 병사를 일으켜 백제를 토벌하였다. 품일ㆍ문충ㆍ중신ㆍ의관(義官)ㆍ천관(天官) 등이 성 63곳을 쳐서 빼앗고, 그곳의 사람들을 내지(內地)로 옮기도록 하였다. 천존과 죽지 등은 7곳의 성을 빼앗고 2,000명의 목을 베었으며, 군관과 문영 등은 12곳의 성을 빼앗고 적병을 쳐서 7,000명의 목을 베고 말과 병장기를 매우 많이 획득하였다.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696&cid=49625&categoryId=49798|《삼국사기》 제6권 <신라본기> 제6 문무왕 상]]''' 기록을 보면 신라가 먼저 웅진도독부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또한 '<답설인귀서>'의 기록을 보면, 670년 6월 고구려(부흥세력)가 당에 반역을 꾀하였기 때문에, 신라가 이를 먼저 웅진도독부에 알리고 고구려 부흥군을 같이 진압하자고 말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만 본다면 신라가 웅진도독부와 협력하여 고구려 부흥운동을 진압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말했다시피, 이미 그전 3월에 요동으로 신라군이 진격을 했고, 또한 백제 80여개 성을 전격적으로 함락하는 것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백제 고지 점령은 신라가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답설인귀서>에는 신라가 671년 7월 시점까지 당나라와의 전면전을 가능한 회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설오유와 고연무 부대의 움직임은 신라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작전이 아니었으며, 신라가 웅진도독부에 공동출병 교섭을 시도한 것은 당에 대한 공격 의지를 일시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허위 전략이라는 시각이 있다.(이케우치 히로시) 노태돈은 신라의 대 요동 작전이 평양 지역의 당군을 소탕하고, 압록강 이북으로 진격하여 당으로 하여금 우선 요동 방면의 안전 확보에 주력하게 하여, 백제 고지에 대한 신라군의 작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양동작전]]이라고 주장하였다. 당나라의 고간, 이근행 등은 670년 4월, 고구려 부흥운동을 진합하기 위해 편성되었지만, 671년 요동에서 고구려 부흥세력을 진압하고, 한참이 지난 9월이 되어서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의 요동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군의 한반도 진격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노태돈이 언급한 바대로, 설오유 부대의 대 요동 공략 작전은 당군 본대의 한반도 진군 시기를 늦추는 데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이상의 여러 주장을 종합해보면, 신라의 정규군은 백제 옛 땅과 고구려 옛 땅 남부에 투입되어 영토를 확보하고, 설오유 부대는 요동으로 진격하여, 견제작전을 수행함으로서 당나라가 백제 고지에 대한 병력 지원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하는, 즉 최소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설오유 부대가 백성으로 후퇴한 후의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671년 신라가 백제 고지의 중심지인 [[부여군]]에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서, 설오유 부대의 목표는 결과적으로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는 670년 3월 설오유 부대를 요동으로 진출시킨 후, 그해 7월 옛 백제 옛 땅을 정복해 나갔다. 이는 곧 당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