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당전쟁 (문단 편집) == 전후 == [[고종(당)|당고종]]은 단순히 나당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설욕하는 것을 넘어 해동 3국 중 2국이 멸망한 이 상황에 신라까지 무너뜨려 한반도 전역 정벌을 이루겠다는 미련이 계속 남아있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사군 시기와 더불어 중국이 한반도를 정복해 직할령으로 삼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구당서》 <장문관 열전>에 의하면 이후에도 신라를 다시 공격하자는 논의가 당나라에서 있었는데, 와병중이던 시중 [[장문관]]이 나서서 [[양면전쟁]]을 우려하며 반대하자 고종이 결국 장문관의 간언을 받아들여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후 683년 고종의 사망, 후계자 문제 혼란, [[측천무후]]의 즉위로 인한 무주의 건국 등 당나라 내부 사정이 어수선해지면서 결국 신라 재공격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